문턱 낮추는 전세보험…'깡통세입자'에겐 그림의 떡
by김인경 기자
2017.01.13 05:00:00
주택도시보증공사, 가입 대상 늘리고 보험료 내려
서울·수도권 4억→5억 전세로 확대
아파트 보증료율도 연 0.128%로 낮춰
60% 이상 대출 주택은 보험 대상 안돼
전세금 떼일 우려 커..여전히 한계
"차 살때처럼 보험가입 의무화해야"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30대 직장인 송모씨는 지난 연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지난 2년간 전세로 살면서 집주인에게 맡겼던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찾지 못했다며 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송씨는 집주인에게 사정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송씨는 결국 석 달이나 기다려 보증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집값 하락과 역전세난 등으로 ‘전세금을 떼일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임차인(세입자)의 전세금을 보호해주는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이하 ‘전세보험’) 가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가입 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보증료율도 여전히 높아 대중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1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에 따르면 지난 2015~2016년 이들 두 곳의 전세보험 가입자는 총 5만 8262명으로 2013~2014년 3만 198명보다 92%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체결된 전세 계약이 155만건을 넘어선 점을 감안하면 전세보험 가입자 수는 3.5% 수준에 불과하다.
전세보험이 출시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제도가 대중화되지 않은데다 가입 문턱 역시 높기 때문이다.
가입금액부터 만만치 않다. 4억원짜리 아파트 전세의 경우 2년간 120만원(연 0.15%)의 보증금을 내야 한다. 그나마도 서울시에서 4억원 이하의 아파트 전세에 사는 세입자만 가입할 수 있다. 또 주택담보 대출금과 전세금 합산액이 아파트값의 100%를 넘지 않아야 가입할 수 있다. 단독·다가구주택은 75% 이하다. 대출이 많고 전세금이 높은 집일수록 가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아울러 전세 기간 2년 중 12개월 이상을 남겨둔 임차인만 이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SGI서울보증의 전세보험은 가입 한도가 없는 대신 보증료율이 연 0.192%(아파트 기준)로 더 비싸다.
이에 따라 HUG는 다음달부터 문턱 낮추기에 나섰다. 먼저 보증료율을 아파트 기준 연 0.15%에서 0.128%로 내린다. 신혼부부나 다자녀가구, 고령 가구 등 사회배려계층은 추가 할인까지 가능해 평균 보증료율 0.089%로 이 보증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가입 대상도 확대했다. 기존에는 서울·수도권 4억원, 지방 3억원 이하의 주택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제 서울·수도권 5억원, 지방 4억원으로 넓히게 된다. 당초 서민들을 위한 보험을 표방한 만큼 가입금액을 4억원 이하로 뒀지만 서울 평균 전세값이 4억 2051만원으로 치솟자 가입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단독이나 다가구, 연립주택에는 차등적으로 적용되던 담보인정비율 역시 아파트와 같은 100%로 통일했다.
위광신 HUG 개인보증팀장은 “서민의 전재산이라 할 수 있는 전세금을 지키기 위해 전세보험 가입 폭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다. 보험 가입을 하려면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다 선순위 근저당권 설정액이 60% 이하인 경우에만 가입할 수 있는 것이다. 집주인에게 집값의 60%보다 더 많은 채무가 있다면 임차인은 이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정작 집주엔에게 전세비를 떼일 위험이 높은 세입자는 가입도 못하는 것이다. 전세 분쟁이 발생해도 법적인 절차를 밟기보다 대화나 쌍방 합의로 해결했던 사회 통념도 가입을 막는 벽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전세 보험을 자율에 맡길 것이 아니라 책임보험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동차보험처럼 집 계약과 동시에 전세보험 역시 무조건 가입하도록 의무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액의 부담을 줄여야 가입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부분보험’ 확대 역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보증금 부담을 낮춘다 해도 아파트 전세금이 3억원의 경우 매년 38만4000원(0.128% 적용)의 보험금을 내는 게 대출 이자나 교육비 부담에 허덕이는 일반 가정으로선 여간 부담스럽지 않아서다. 전액이 아니라 각자 형편에 맞게 비율을 선택해 보험료를 줄일 수 있는 부분보험이 확대되면 서민들의 접근이 쉬워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SGI서울보증은 부분보험이 아예 없고 HUG는 부분보험을 제공하고 있지만 지난해 9월 말 기준 가입 비율이 14%에 불과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부분보험을 도입해 세입자의 금액에 대한 부담은 줄이되 보증료율을 높게 책정해 HUG가 입을 수 있는 손실을 관리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이란…
전세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집주인이 전세금 반환을 거부하거나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보증기관이 이를 보장해주는 상품이다. 현재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과 SGI서울보증의 ‘전세금 보장 신용보험’ 등 두 가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