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종오 기자
2015.12.14 06:00:00
서울 은평구 9월 미분양
국토부 "0" 발표했지만
실제 96가구…업계 "축소 보고 관행"
내 집 마련 소비자는 분통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서울에서 전세살이하는 직장인 정모(37)씨는 올해 은평구에 있는 새 아파트 분양 계약을 했다가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는 은평구에는 미분양 주택이 단 한 채도 없다는 정부 통계를 믿고 이 동네에 있는 집을 사기로 했다. 하지만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아직 팔리지 않은 집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13일 본지가 국토교통부 미분양 주택 현황과 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받은 아파트 분양 계약률 자료를 대조한 결과, 전국 곳곳에서 이처럼 미분양 물량을 실제보다 축소하거나 미신고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분양 주택 현황은 내 집 마련을 바라는 소비자가 주로 이용하는 서민 밀착형 통계다. 그러나 정보 생산을 맡은 정부가 정확성이 크게 떨어지는 통계를 내버려두면서 시장 혼란을 부르고 정책 신뢰도도 훼손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률을 집계한 전국 63개 시·군·구 중 약 20%인 13곳에서 이런 오차가 발견됐다. 국토부가 공개한 자료에는 해당 지역에 미분양 주택이 전혀 없거나 일부에 불과했지만, 공사가 자체적으로 확인한 미분양 물량은 이를 최대 10배 넘게 웃돈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서울 은평구와 충북 옥천군, 전남 여수시의 미분양 주택 수는 ‘0’이었다. 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 자료를 보면 같은 시기 은평구 내 미분양 아파트는 96채에 달했다. 옥천군과 여수시도 미분양 아파트가 각각 137채씩 있었다. 경기 광주시의 경우 두 통계 간 미분양 주택 수가 546채나 차이 났다.
게다가 국토부 통계에 빠진 미분양 주택은 이 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주택도시보증공사 통계의 조사 표본이 국토부 통계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공사는 민간 아파트 단지의 분양 계약률을 3개월마다 집계한다. 건설사가 부도날 경우 분양 계약자가 낸 돈을 돌려주기로 보증을 선 까닭이다. 건설사로부터 실제 계약자 명단을 넘겨받는 만큼 통계에 허수가 낄 여지가 거의 없다. 다만 분양률은 계약을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났으나 아직 6개월은 넘지 않은 초기 사업장만 공개하고 있다.
반면 국토부 통계는 지역 내 아파트·연립·다세대주택 등 모든 공동주택의 미분양 발생 현황을 담는다. 분양 시기도 가리지 않는다. 최소한 공사가 집계한 것과 미분양 주택 수가 같거나 그 보다 당연히 많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 주택 수 신고가 의무가 아니어서 축소 신고하는 것이 업계 관행”이라며 “과거처럼 미분양 아파트 구매자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세금 혜택 등도 사라져 정확하게 신고할 유인이 더 줄었다”고 말했다.
구멍 뚫린 정부의 부동산 통계를 대대적으로 손보자는 목소리가 높다. 미분양 주택 현황 통계는 그 대표격이다. 최근 정부가 진행한 주택·부동산 통계 관련 연구 용역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주택시장의 구조 변화에 대비한 전반적인 통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인호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분양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고 월세 현황, 분양 등 주택 공급 추이, 전세·집단 대출 등 주택 금융 관련 정보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