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도년 기자
2012.06.22 08:21:23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국 중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 그러나 노동자들의 삶은 바뀌지 않는 나라.
기자가 아는 한 외신기자는 한국을 취재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 한국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은 참 역동적인 지옥(Korea is really dynamical hell)"이라고. 열심히 일하는 국민을 만났지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일자리가 귀해진 노동시장에선 온갖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관행으로 굳히기 위한 시도들이 횡행한다. 근로조건이 아무리 열악해도 어차피 일할 사람은 넘친다는 자본의 오만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193시간. OECD 주요국들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인 1749시간보다 무려 25.4%나 높다. 이러한 높은 노동 강도 속에 근로자들의 노동착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른바 `포괄임금제`. 수당을 한꺼번에 임금으로 묶어 지급하는 이 제도는 노동자들의 숨통을 더욱 조이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일관된 기준도 없이 퍼져 나가고 있는 포괄임금제를 방관만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포괄임금제 악용 사업장을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상시로 점검하고 있다"는 답변만 내놓을 뿐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다. 관련 통계조차 없다. 문제의식도 없다.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노동자,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이제껏 관련 법령을 정비하기 위한 시도조차 없었다. 포괄임금제를 아는 국회의원은 몇 명이나 될까 싶다. 흘러간 라디오를 다시 듣고 있는 듯한 종북 논쟁은 노동자의 생계 문제보다 더욱 값진 일이 된 지 오래다. 정작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경제민주화는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다.
노동자들을 상담해 온 일선 노무사들은 "고용부와 국회 등 관계 당국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령에 포괄임금제 적용 기준부터 명확히 하고 그 이후에는 기준에 어긋난 사업장을 조사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사용자들이 노동자를 `도구`가 아니라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것이다.
"아무리 법령을 잘 만들어 놓아도 현장에 있는 사장들이 법망을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면 소용이 없다"며 "사장들부터 진심으로 직원들의 건강을 걱정해 장시간 노동을 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한 중견기업 사장의 말이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