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방관이다]"인명 구조하다 죽으면 영광"…소방관 10년간 51명 순직

by송이라 기자
2018.01.15 06:30:00

한해 376명이 화재진압 구급활동으로 부상
공상자 2013년 291명에서 작년 538명으로 급증
업무특성상 와상후 스트레스나 우울증 환자 많아
소방관 10명 중 7명은 건강이상 10명간 78명 자살
인력확충, 소방청 정책부서 기능 강화 서둘러야

강원 강릉소방서에서는 작년 9월 17일 새벽 강릉시 강문동 S호텔 신축 현장 옆 정자인 ‘석란정’(1956년 건립)에서 발생한 화재 진화 중 붕괴 사고로 매몰돼 소방관 2명이 순직했다. 화재진압 후 동료들이 애통해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최근 제천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소방관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초동대처가 미흡했다는 비판 속에서도 고질적인 인력부족과 노후화된 장비, 여기에 같은 공무원이지만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차별은 ‘긍지에 살고 사명에 죽는’ 대한민국 소방관들의 사기를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방관의 처우개선을 위해 국가가 나서겠다”고 했지만 갈 길은 멀기만 하다.

14일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무상상해(공상) 소방관수는 해마다 증가세다. 2013년 291명이던 공상자는 2015년엔 376명으로 늘었고 작년

(11월기준)에는 538명으로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376.2명이 화재진압과 구급활동 중에 부상을 입었다. 화재진압 등 위험직무 중 순직한 소방관만 최근 5년간 16명에 달한다.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고 현장에 뛰어들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소방인력은 법에 정해진 정원보다 1만9254명(2016년 기준) 적다. 전체 정원의 63%에 불과하다. 전체 소방인력은 4만4000여명이다.

특히 29명의 희생자를 낸 제천참사가 발생한 충청북도는 정원의 절반도 확보하지 못했다. 세종시에 이어 인력부족 2위다. 소방공무원은 국가직이 아닌 지방직이라 해당 지자체의 재정상황에 따라 인력과 예산이 결정돼 지역별 편차가 크다.



주영국 충북소방본부 소방정은 “제천시 전체를 관할하는 출동인력이 34명에 불과하다”며 “대형화재를 진압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라고 말했다. 제천은 인력부족 탓에 운전요원 1명이 소방차 2대를 맡고 있다. 이마저도 손이 딸려 화재 현장에서는 운전요원이 펌프도 조작하고 불도 끄고 모든 구조활동에 투입되는 현실이다. 지휘자와 안전관리자, 화재 진압자, 진압자 부상시 그들을 구조할 예비 구조대원까지 총출동해 현장 도착과 동시에 진화·구조작전부터 짜는 미국과 비교하면 낯 뜨거울 정도다.

몇 안되는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작전은커녕 불끄기도 급급한 현실에서 완벽한 구조활동을 기대하는건 무리일 수밖에 없다. 2016년 한 해 동안 발생한 화재건수는 4만3000여건에 달한다.

[이데일리 이서윤 기자]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방관들의 건강은 날로 이상신호를 보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한 소방공무원 10명중 7명이 난청·폐 손상 등 건강 이상 소견을 보였다. 업무특성상 극도의 위험상황에 노출되면서 오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는 소방관들도 많다. 소방청에 따르면 실제 지난 10년간 소방공무원 중 자살자수는 78명으로 순직자(51명)보다 많았다.

지난 2015년 네팔 지진 당시 구조대장으로 활동했던 베테랑 소방관 강대훈 소방청 구급과장은 “네팔에 다녀온 후 고약한 시신 썩는 냄새가 생생하게 느껴져 잠에서 깬 적이 있다”며 “소방관들은 제대로된 실습 없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돼 죽을고비를 넘기면서 상황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청은 각 지역 소방본부와 지역 의대간 협약을 맺고 시신해부실습에 정기적으로 신임 소방관들을 참여하게 하는 교육과정 개설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열악한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국가직 전환을 서두르고 소방청의 정책기획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국가직 전환은 지역간 차이가 큰 소방인력을 중앙에서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다만 지자체장들이 지역특성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는 방향으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순 현장 구조인력뿐 아니라 정책부서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소방청의 인력 확충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