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야기]①치과용 영상장비 세계3위,글로벌 강소기업 바텍의 노창준 회장
by강경훈 기자
2016.11.08 07:00:00
세계 최초 2D, 3D 동시 촬영 영상장비 개발
매출 74%가 수출, 90개국 진출
원천기술 확보해 국산화율 90% 넘어
| 치과용 엑스레이 장비를 살펴보고 있는 노창준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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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의료용 진단장비 글로벌 시장의 절대 강자는 ‘GPS’로 일컬어지는 GE·필립스·지멘스다. 하지만 ‘치과용 진단장비’ 시장에서는 맥을 못 춘다. 탁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치과용 진단장비 틈새시장을 공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한 국내 회사가 있다. ‘바텍’이라는 회사다. 1990년대 초 산업용 엑스레이 기기 회사이던 바텍을 치과용 영상기기 세계 3위의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도약시킨 주인공은 노창준(58·사진) 바텍네트웍스 회장이다.
◇세계 1위 가능성 틈새시장 찾아 집중
그는 외환위기로 회사가 급격한 어려움에 처한 이후인 2001년 구원투수로 바텍에 합류했다. 노 회장은 글로벌 1위를 달성할 가능성이 1%라도 있는 틈새 분야를 꼼꼼하게 찾았다. 마침 치과용 영상장비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치과용 영상장비 시장은 ‘GPS’ 3인방이 보기에 규모가 너무 작아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었다. 또 50~60년 전통을 가진 독일과 핀란드 기업들은 치과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장비를 총망라한 ‘치과 전문기업’들이라 영상장비에 투자나 연구개발(R&D)을 집중하지 않았다.
노 회장은 치과에 집중해 디지털 영상장비를 만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수입산이 국내 시장을 100% 장악하던 2003년, 바텍은 디지털 파노라마 엑스레이 국산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름없는 국내회사 제품에 관심을 가질 치과의사는 없었다. 노 회장은 마케팅에 승부를 걸었다. 필름이 필요하고 영상을 얻는데 시간이 걸리던 기존 장비 대신 디지털은 촬영 직후 바로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어 환자 상담이 쉽다는 걸 강조했다.
디지털 엑스레이가 성공궤도에 오르자 바텍은 임플란트를 위한 치과용 CT(컴퓨터 단층촬영) 개발에 들어갔다. 임플란트는 골밀도가 높은 곳에 심어야 하는데 2차원 엑스레이로는 알 수 없고 3D로 영상을 구현해야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다. CT 원천 기술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대학을 찾아다니며 조금씩 기술을 익혔다. 2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2005년 세계 최초로 파노라마, 세팔로(교정진단용 엑스레이), CT가 한 기계에서 모두 가능한 장비인 ‘임플라그래피’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초기부터 엑스레이와 CT를 따로 구비해 비용과 공간에 어려움을 겪던 치과의사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임플라그래피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현재 70%에 이를 정도다. 2006년 바텍은 임플라그래피를 홍콩에 처음으로 2억원에 수출했다. 3개월이 지나도 가타부타 반응이 없길래 직접 찾아가 봤더니 기기가 이미 경쟁업체에 3억원에 넘어가 있었다. 2009년부터 경쟁사들이 동일한 제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노 회장은 “당시에는 특허 전문가가 따로 있지 않아 원천기술이 많이 유출됐다”며 “원천기술 관리에 신경을 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팍스-아이(Pax-i)3D 스마트는 바텍이 2014년 세계 최초로 2D와 3D 영상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장비다. 바텍에서는 ‘10여년 축적된바텍 기술력의 집합체’로 부른다. 영상의 질과 선명도는 높이면서 환자안전을 위해 방사선 양은 줄였다. 이 제품은 특히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바텍의 3D 제품 중 팍스-아이 3D 스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을 정도다.
◇규모 커지며 운영 위기…중소기업 맞는 시스템 구축
2006년 바텍이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노 회장은 바텍의 실질적 오너가 됐다. 처음 바텍을 세웠던 설립자가 자신의 모든 바텍 지분을 노 회장에게 양도했기 때문이다. 노 회장은 현재 지주회사인 바텍이우홀딩스의 지분을 70% 이상 보유하고 있다. 바텍이우홀딩스는 상장사인 바텍과 레이언스의 지분을 각각 46%, 32%를 가지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사업이 2010년 들어 위기를 맞았다. 회사 매출이 300억원에서 1000억원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직원수가 20여명에서 갑자기 200~300명으로 커지는 와중에 벤처 규모에 맞는 운영시스템이 여기저기서 허점을 보이기 시작한 것. 전세계 90여개국 이상에 진출하게 되면서 많은 문제가 생겼다. 같은 기기라도 나라별로 인허가 규제가 모두 달라 나라별로 조직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인력의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영업이익률도 6~7%대로 곤두박질쳤다. 노 회장은 “벤처가 능력 이상으로 성장하다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라며 “회사는 의지와 꿈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노 회장은 피라미드 계층식 대기업 시스템 대신 ‘협업과 공유’에 중점을 두는 시스템을 생각했다. 이익과 정보, 업무 등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조직원들이 공유하고 협력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내부에서는 너무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반발이 있었지만 노 회장은 밀고 나갔다. 지금도 모든 직원이 회사의 미래전략부터 시시콜콜한 일까지 모두 알만큼 바텍에는 비밀이 없다.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영업이익률도 20%대로 안정을 찾아갔다.
◇부품국산화율 93%, 매출의 74%가 해외
바텍은 엑스레이의 핵심부품인 디텍터(몸을 투과한 엑스레이 신호를 잡아내는 장비)를 직접 만든다. 자회사인 레이언스는 디지털 엑스레이 디텍터 글로벌 1위 기업이다. 고속 촬영이 가능한 CMOS 디텍터, 대형 TFT디텍터 기술을 모두 자체 확보하고 있다. 레이언스는 디텍터 하나만으로 지난해 매출 866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는데 이중 73%가 외국 기업에 납품한 것이다. GE는 2013년 레이언스의 유방촬영 자산을 아예 인수했다. 현재도 레이언스는 GE에 유방촬영용 디텍터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영상 구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직접 만드는 등 바텍의 부품 국산화율은 93%가 넘는다. 노 회장은 “원천기술이 없으면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라며 “디텍터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의 바텍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바텍의 매출은 2174억원. 이중 74%인 1603억원이 해외매출이다. 현재 93개국 5만2263곳의 치과에 바텍 장비가 진출해 있으며 41분에 1대씩 장비가 팔리고 있을 정도다.
◇탄소나노튜브, 인공지능 등 미래 기술 연구 중
바텍은 탄소나노튜브와 인공지능(AI)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엑스레이를 쏘면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할 수 있고, 방사선 노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또 AI를 활용하면 촬영한 영상을 스스로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치아 사이가 썩는 치간우식증 진단용 AI의 경우 현재 90% 이상의 정확도는 확보했다. 노창준 회장은 “AI가 구현되면 진단의 효율성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창준 바텍 회장은?
1985년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평화프라스틱에 입사했다. 이후 화천기계, 넥스트 라이프, 제일제강공업 등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일했다. IMF 이후인 2001년 바텍에 합류해 산업용 엑스레이 기업에서 치과진단용 엑스레이 기업으로 변신시켜 세계 3위의 치과용 의료기기 업체로 성장시켰다. 2009년에는 헬싱키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