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플레이DB 기자
2014.09.16 07:57:07
뛰어난 가창력을 바탕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보컬로 가수 김범수를 이야기하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1999년 데뷔 후 한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그의 놀라운 노래에만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도록 의도했던 적도 있으나 이제는 가창력 뿐 아니라 예상을 깨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무대 매너로 누구보다 뛰어난 '비주얼 가수'로도 거듭나고 김범수. '사랑일뿐야', '하루', '보고 싶다' 등 가슴을 적시는 수많은 히트곡들과 함께 마이크만 잡으면 주변을 순식간에 그의 목소리와 감성으로 잠식해버리는 놀라운 재주를 가진 그가 이제는 관객들의 마음을 성형시켜주겠다고 나섰다. 15년 동안 한 해도 공연을 쉬지 않고 이어온, 앞으로 더더욱 공연쟁이가 되고 싶다는 김범수의 '힐링 투게더' 프로젝트. 올 10월 그의 콘서트 <2014 김범수 겟올라잇쇼 비포 앤 애프터>를 아니 고대할 수가 없다. * 인터뷰는 8월 30일 진행되었습니다.
'잘했다', '믿고 본다' 등의 평가를 받아서 좋긴 하지만, 방송을 보니 내가 너무 진지하게 했더라. 옆에 종신이 형도, 승철이 형도 계시는데 내가 제일 어른처럼, 이건 좀 안되겠다 싶었다. (웃음)
지금까지 쭉 심사를 받아왔던 사람 입장이었으니까, 그 심사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해서 거기까지 온 지 너무 잘 알기에 말 한마디라도 진짜 따뜻하게, 또 아닌 건 아니라고 정확하게 해주고 싶은 거였다. 내 말 한 마디에 저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좀 진지해진 것 같다. 그런데 앞으로는 좀 부드럽게, 여유롭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오디션 보는 분들도 좀 더 편안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난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을 해왔다. 내가 잘 해야 후배도 좋고, 내가 잘 해야 선배들을 욕보이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인데 너무 나밖에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사실 지금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방송으로 단 한번 본 적도 없다. 그런 사람이 지금 <슈퍼스타K 6> 심사위원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심사의 노하우가 없다. 어떻게 멘트를 해야 어록이 되고 어떻게 해야 방송에 잘 나오는지 등은 전혀 모른다. 단지 이젠 후배들이 어떻게 하는지, 내 얘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힘을 얻어서 저 사람이 혼자 서는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쪽에 관심이 생긴 거다. 이젠 후배들을 끌어줄 수 있는 선배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다. 참가자들도 대부분 너무나 잘하고 있다.
이번에도 처음에 심사위원을 고사했던 게, 일단 내가 무슨 심사를 하나, 싶었고 또 음악을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수들끼리 경연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가수가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도 아니고 무슨 경연인가, 그런 건 안 한다고 생각했다가 심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고 난 즐길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게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경연 프로그램이고 누군가 5억 원의 상금을 받게 된다는 시스템 안에서 <슈퍼스타K 6>를 바라보면 그건 굉장히 모순덩어리이고 난 참여하지 못한다. 그건 어느 하나의 형식이고 난 저들이 얼마나 하는지, 내가 저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만을 생각하고 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최근 한 3년간 쉬면서 진짜 앨범을 내고 싶었는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면 '또 시작됐구나, 힘들어 죽겠다' 싶다. (웃음) 그런데 지금까지 8장의 앨범을 내고 나니 이젠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그리울 테니 순간순간 열심히 재밌게 하자는 생각이 든다. 득도한 셈이다. 며칠 전엔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촬영 장소가 지하 3층, 벽에 곰팡이가 쫙 핀 곳이었는데, 내가 그 장소가 좋다고 갔으니 할 수 없지. (웃음) 12시간 그곳에서 촬영했는데 그림이 약간 몽환적으로 너무 예쁘게 잘 나왔다.
음악하는 사람들의 제일 큰 고민이 고여있을 것인가, 흘러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고여있으면 안정적이긴 하지만 지난 가수가 될 것이다. 난 새로운 것에 부딪혀 보고 대중들의 따가운 평가도 받으면서 흘러가야 한다는 쪽이다. 공연도 마찬가지다. 공연하면서 부딪히는 가장 큰 벽은, 관객들은 공연은 즐기러, 또 한 번씩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오시는데 함께 달리려고 하다가 공연이 끝나버린다는 거다. 그나마 <나가수> 때 생긴 레퍼토리들을 노래하면 너무 좋아하신다. 그런데 그 다음이 없다. 공연쟁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업 템포곡,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곡이 필요한 거다.
결국 난 공연쟁이가 되고 싶고, 앨범을 통해서 그런 곡들을 확보해서 공연장에서 관객들과 다양하게 놀고 싶다. 그래서 언제나 지향하는 나의 모토는 '소울 가수' 보다 '조울 가수'다. 다 울렸다가 또 확 웃길 수도 있는 공연쟁이가 되고 싶다.
비포 & 애프터- 당신의 마음을 노래로서 성형시켜주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내게 '비주얼 가수'라는 별칭을 만들어주셨는데,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이야기 아닌가. (웃음) 세상에 정말 잘생긴 사람들이 많고, 또 물론 나도 그 힘을 받았지만 (웃음) 의느님의 힘을 받아 미남 미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이 얼마나 예쁜가, 마음이 얼마나 예쁘게 성형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난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 테라피인 거다.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성형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광고에 '비포 앤 애프터'라는 걸 보고 생각이 딱 들었다. 내 노래를 듣고, 내 공연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치유 받고 힘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항상 공연 색을 바꾸려고 한다. <나가수> 하고 바로 했던 공연은 그간 했던 공연과는 전혀 다른 버라이어티한 공연이었고, 그 다음에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던 <쇼케스트라>는 팝과 클래식을 접목했었다. 작년엔 악기 편성 등 모든 걸 줄여서 소극장 콘서트를 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이 이 모든 공연의 완성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노하우들을 접목해서 비주얼적인 면들, 완전히 정적인 무대, 그리고 조금은 클래식했던 무대까지 담긴 공연이 될 것 같다.
단순히 게스트를 위한 게스트는 공연의 맥을 끊는다고 생각을 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지양하고 있다. 또 가수가 호흡을 가다듬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나온 게스트는 너무 티가 나지 않는가. 콘서트는 하나의 '김범수 쇼'인데 김범수가 옷을 갈아입는 것 등을 관객들이 인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게스트가 나와도 공연의 어느 부분이 되어서 같이 공연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할 것이다.
2014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공연 당시
그래서 난 공연이 제일 좋다. 녹음이나 앨범 작업은 1인칭적인데 공연은 정말 무언가 내가 딱 쏘는 순간 완전히 쌍방으로 교류가 이뤄진다. 내가 던진 에너지를 관객들이 받아서 다시 내게 던져주고, 핑퐁처럼 오가는 그것이 가장 매력적이다. 이렇게 나와 관객이 하나가 되었을 때의 희열은 뭐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공연이나 앨범을 만들면서 힘들기도 하지만 이런 무대 위의 느낌 때문에 다 해소가 되는 것 같다.
무대에 올라가면, 이게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무당이 작두를 타듯 내가 뭘 어떻게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게 된다. 오히려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무대엔 존재한다.
사실 내 나이, 내 연륜으로는 그런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도 힘들고 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나서 한 게 아니라, 날 사랑해 주시는 분들, 나와 함께 하시는 분들이 내가 깔 수 없는 멍석을 깔아준 것,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다. 과연 내가 자격이 있나 싶어 부담도 컸지만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분명 무대가 주는 압도감이 있더라. 무대 위에 섰는데 그 무대가 나에게 쏟아져오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세계적으로 굉장히 유명한 뮤지션들도 서기 어렵다는 곳에 서니, 수 많은 뮤지션들의 기운들이 그 공연장에 다 베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공연장 자체가 주는 카리스마를 굉장히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으로 느끼고 왔던 것 같다. 앞으로 공연하는 데에도 굉장히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우선 '보고싶다'라는 곡 자체가 갖고 있는 영향력, 파급력은 아직까지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생명력이 있는 곡을 갖고 있다는 건 가수로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 곡이 나에겐 가장 큰 축복인 것 같다.
그리고 <나가수>라를 프로그램도 큰 축복이었다.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나를 많은 분들이 재발견해주신 건 내 노래 인생 중에서 굉장히 큰 사건이었다.
공연도 빼놓을 수 없다. 15년 동안 한 해도 쉬지 않고 공연을 했으니까. 진짜 민망할 정도로 망친 공연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겪으며 쉬지 않고 공연을 해왔던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원동력 같다. 가수 역시 돈을 버는 일종의 직업이지만 공연 만큼은 수익이 목적인 일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싸이 형이 내게 해 준 말이 정말 인상 깊었는데, '공연으로 돈을 벌려고 하지 마라, 공연에 투자해라, 관객들을 만족시켜라, 그러면 너는 공연으로 돈을 못 벌지라도 공연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정말 공연은 팬들에게 주는 선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아낌없이 공연에 재투자하면서 앞으로도 가려고 한다.
고집이 센 편이다. (웃음) 아집도 좀 있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이런 고집 때문에 지금까지 해 온 것도 있고, 내가 더 나가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런데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나가수> 할 때도 12번의 무대를 했는데 매번 이런 저런 시도도 많이 하고 의상도 별의별 걸 다했는데 그 때 반대가 정말 많았다. 무대 할 때마다 회사 직원들, 편곡자들과 싸우고. (웃음) 그런데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느냐, 떨어지더라고 해보고 떨어지겠다, 해서 정말 내 맘대로 했는데 잘 된 경우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 무너질 땐 한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반성도 많이 하고. 그런데 성격은 잘 고쳐지지 않는 것 같더라. 개인적으로 내 성격이 좋다. 내가 좀 자기애가 있다. (웃음)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 CJ E&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