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답이다]2030 남녀, 왜 서로를 싫어하게 됐나
by조민정 기자
2022.01.01 08:10:00
[상쟁 아닌 상생]②
2016 강남역 살인사건…페미니즘 논쟁 촉발
병역, 취업, 양육, 범죄 등 복합적 요인
"여성에 역차별당한다" vs "남성 중심 사회 여전"
"혐오, 삶 개선 도움 안돼…대화와 학습 늘려야"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쟤 좀 봐, 허버허버 먹더니 웅앵웅거리네” vs “대기업 취직했는데 여자들한테 설거지 당해서 퐁퐁남 될까 무섭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 남녀는 ‘견묘지간’이라 할 만큼 사이가 벌어졌다. 남녀가 서로를 혐오 표현으로 부르는 일은 이제 비일비재하다. 세대별로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갈등과 더불어 남녀 사이의 ‘젠더갈등’ 역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특히 2030세대, 이른바 MZ세대의 남녀 갈등이 심화하면서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단 지적이 많다.
| 2016년 5월 22일 서울 강남역 10번출구를 찾은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강남역 인근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생면부지의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30대 남성 피의자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로 “여자들에게 무시당했다”고 진술해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논란이 확산됐다.(사진=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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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으로 촉발된 ‘여혐(여성혐오)’ 문제는 2030세대 젠더갈등의 시발점이 됐다. 일면식도 없는 젊은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김성민은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해 여성들의 공분을 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남성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여성은 양육과 가사노동에서 더 많은 부담을 짊어짐에도 불구하고 채용과 승진에서 밀리고, 남성에 의한 범죄에 노출될 위험까지 안고 살고 있단 성토였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은 남성혐오라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반면 젊은 남성들 사이에선 여성혐오가 유행처럼 번졌다. 남성들은 청춘기에 군 복무 의무를 짊어지지만 여성은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는데다 취업시장에서도 ‘부당’하게 남성을 앞지른다는 이유다. 취업 문턱은 높아졌는데 일부 기업은 ‘여성 할당제’ 등으로 여성을 우대하면서 남성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이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권리 및 기회 평등’이 핵심인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 식으로 잘못 이해하고 반감을 갖는 젊은 남성들이 늘고 있다.
이처럼 젠더갈등엔 병역, 취업, 양육, 범죄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 있다. 특히 경제침체기에 한정된 취업·승진 기회를 놓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격화되면서 남녀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올해 여대를 졸업한 안모(26·여)씨는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여권 신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안씨는 “부모 세대보다야 세상이 나아졌다지만 취업 면접 때에 숏컷이나 정장 바지를 입고 가면 면접 질문을 공격적으로 받는 경우도 많았다”며 “함께 일하는 남자 직원이 제시하는 아이템을 보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해 기분이 상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반면 직장인 최모(28·남)씨는 취업 후에 남성 역차별에 대한 문제 의식이 더욱 강해졌단 입장이다. 최씨는 “군대를 갔다왔는데 나보다 젊은 여자를 상사로 모셔야 하고, 생수통 갈아끼우기 등 조금만 힘 쓰는 일이 생겨도 죄다 남자라고 우리한테 떠민다”며 “상사들 비위 맞추려는 회식 자리에서도 여자들은 술도 안 먹고 일찍 자리떠도 아무도 비난 안하니 부럽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젠더 갈등이 단기간에 해결되긴 어렵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각자의 이해관계에서 보면 남성과 여성이 각각 모두 불행한 건 맞지만 과연 서로 혐오하면서 그들의 일상이 나아지고 개선됐는지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며 “남녀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요인들이 얽혀 있는 것이니 상대방을 헤아리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도 “한국 사회가 성별화된 방식으로 교육해왔기 때문에 젠더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다른 이해는 어쩌면 당연하다”며 “현재의 양상을 단기간에 해결하는 것은 어렵고, 지속적인 학습과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함께 풀어나갈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