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제 수탈 아픔 서린 양곡창고…쌀 대신 예술 채우다
by강경록 기자
2020.05.15 05:00:00
전북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여행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삼례''
만경평야의 넉넉함 수탈의 표적돼
수탈 징표에서 예술과 문화의 공간으로
10만여권 빼곡히 들어선 삼례책마을
| 일제 수탈의 상징이었던 전북 완주 삼례양곡창고는 100여년간 자리를 지켜오다 2013년 삼례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했다. 양곡을 저장하던 창고에는 미술관과 공연장, 공방, 그리고 카페가 들어섰다. 사진은 삼례문화예술의 ‘모모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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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전북을 대표하는 도시 전주. 그 전주를 휘감고 있는 도시가 바로 완주다. 완주에는 예부터 교통의 요지였던 삼례읍이 있다. 한양에서 해남을 잇는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만나는 갈림길에 자리해 국가 통신기관인 역참이 있을 정도였다. 그것도 호남에서 제일 규모가 컸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여기에 만경강 상류에 자리해 일 년 내내 곡식이 풍성하고 물길이 마르지 않았다. “호남은 삼례로 통한다”고 했을 만큼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삼례였다.
| 일제 수탈의 상징이었던 전북 완주 삼례양곡창고는 100여년간 자리를 지켜오다 2013년 삼례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했다. 양곡을 저장하던 창고에는 미술관과 공연장, 공방, 그리고 카페가 들어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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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의 현장에서 문화의 공간으로 ‘삼례문화예술촌’
삼례가 품은 넉넉함은 곧 주민들의 평안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 삼례읍은 수탈의 표적이 됐다. 만경평야에서 생산한 막대한 양곡과 편리한 교통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군량미 수탈에 열을 올리던 일제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삼례에 역을 짓고, 양곡창고를 세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제는 완주의 양곡을 군산으로 빼돌렸다. 양곡창고는 완주 농민들에게 빼앗은 쌀들로 빼곡했다. 밤마다 “한 말 한 섬” 쌀 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삼례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나라 잃은 아픔과 배고픔을 눈물로 삼켜야 했다. 삼례는 일제강점기 양곡 수탈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 일제 수탈의 상징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삼례문화예술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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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양곡창고는 수탈의 징표로 10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왔다. 해방 이후에도 삼례읍의 양곡 창고는 일대에서 거둬들인 쌀을 보관하는 기능을 해왔다. 당시의 아픔을 간직한 양곡창고는 지금도 삼례역 주변에 일부 남아 있다. 2010년 전라선 복선화로 철로와 역사가 옮겨 가면서 기능을 잃은 양곡 창고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예술이었다. 낡아 기능을 상실한 양곡창고는 2013년 완주군과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삼례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시켰다. 양곡을 저장하던 공간에 미술관과 공연장, 공방, 그리고 카페가 들어섰다. 수탈의 현장이자, 한적했던 시골 마을은 문화와 예술에 목말라하던 주민들에게 오아시스가 됐다.
| 일제 수탈의 상징인 양곡창고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삼례문화예술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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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했던 창고는 쌀 대신 책과 예술작품으로 채워졌다. 일본인 대지주가 사용했다는 삼례양곡창고는 다양한 장르의 작가를 소개하는 ‘모모미술관’으로, ‘협동생산 공동판매’란 글귀가 눈길을 끄는 삼례농협창고는 예술공연과 영화상영이 이뤄지는 소극장으로 변신했다. 그 옆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오랜 명성을 쌓은 김상림 작가의 작업실이자 나무를 자유자재로 깎고 다듬은 가구와 소품을 만나볼 수 있는 김상림목공소가, 건너편에는 디지털아트관과 책공방 북아트센터가 이어진다. 이곳들에선 양곡창고를 배경으로 전시한 미디어아트와 기발한 설치작품들, 그리고 활판인쇄기와 제본기 등 책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기계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자들을 위한 휴식공간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카페 뜨레는 오래된 나무골조 사이로 커피향이 은은하게 배어 색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삼례는 책이다 ‘삼례책마을’
삼례문화예술촌 길 건너에 있는 삼례책마을도 양곡 창고를 개조한 시설이다. 북 하우스, 한국학아카이브, 북 갤러리, 삼례책마을 센터까지 오밀조밀 모여있다. 대략 10만여 권이 1층부터 2층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고서적부터 건축, 미술, 공학 등등 책분야별 시대별 없는 게 없을 정도. 1층 카페에서 구입한 책을 조용히 읽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도 좋다.
책마을로 들어서면 2층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더미에 순간 멈칫한다. 박물관이라고 해야 할지, 도서관이라고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힐 정도다. 입구에 옛 책방의 향수가 느껴지는 무인서점이 자리 잡고 있어 누구나 마음에 드는 책을 구입할 수 있다. 희귀한 동서양의 고미술품을 전시 판매하는 뮤지엄 숍도 자리 잡고 있다.
서점 옆 박물관은 한 해 두세 차례 기획전시를 열어 볼거리를 더하고 있다. 시골의 작은 책방이라고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박대헌(67·사진) 이사장은 중학생 때부터 수집해 온 희귀 기록과 인쇄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전시물이다.
현재 ‘시집 연애보’와 ‘철수와 영이:김태형 교과서 그림’, ‘옛날은 우습구나:송광용 만화일기 40년’이 전시 중이다. 단 한 권의 시집을 전시하고 있는 ‘시집 연애보’는 전주 출신 문학도인 송기화(1920~)의 미발표 시집 원고다. 송기화는 1942년 8월 16일부터 결혼 3일 전인 12월 25일까지 약 넉 달간 이 일기를 작성했다. 결혼상대는 당시 전북고교 교사 또는 학생으로 추정하는 박상래씨다. 한 권의 시집을 통해 당시의 연애와 결혼 풍속도를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철수와 영이’는 1946년부터 30여년 동안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옛 국민학교 교과서 주인공이었던 ‘철수와 영희’가 사실은 ‘철수와 영이’였다는 점이다. 송광용(1934~2002) 만화일기는 1952년 5월부터 1992년 2월까지 40년 동안 쓴 만화 형식의 일기다. 송광용씨는 아마추어 작가로 만화가를 꿈꿨지만, 끝내 등단하지 못한 비운의 만화가이다. 만화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던지, 군생활 도중에도 만화 일기를 멈추지 않았다. 만화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한 평범한 남자의 꿈과 현실, 희망과 좌절을 엿볼 수 있다.
◇여행메모
△가는길=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용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익산역에서 전라선 하행선으로 환승해 삼례역에 내린다. 서대전역에서는 삼례역까지도 열차를 운행한다. 1시간 12분 정도 소요된다. 역에서 예술촌까지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고속버스를 이용할 경우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우석대학교행을 타면 된다. 3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승용차는 호남고속도로 삼례톨게이트로 나가면 되는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먹을곳= 삼례문화예술촌과 책마을 사이에 식당과 카페 등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조성했다. 한식뷔페로 운영하는 ‘새참수레’는 고령자 친화기업으로 현재 완주군내 어르신들이 주방과 계산대를 책임지고 있다. 농가 레스토랑 ‘비비정’도 삼례문화예술촌에서 가깝다. 버섯전골·홍어탕·불고기 주물럭 등이 대표 메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