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에서] 그 많던 친문패권은 누가 다 먹었을까?
by김성곤 기자
2017.06.12 06:30:00
서훈 국정원장 임명장 수여식 “조국 수석 옆에는 앉지마”
기승전‘문재인’ 친문패권주의 비판 새 정부 출범 이후 실종
문재인식 파격소통과 친문배제 탕평인사가 결정타
지지율 고공행진, 정치적 대항마 부재로 지속 가능성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오후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갖은 후 청와대 소공원에서 산책하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왼쪽 앞줄부터), 문재인 대통령, 조현옥 인사수석, 임종석 비서실장.(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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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고 박완서 선생의 자전적 장편소설 중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후속편으로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책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한 달 이후 상황을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 오마쥬해보면 <그 많던 친문패권은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친문패권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정도가 아닐까요.
정치적 반대자들이 문재인 집권 이후 우려했던 ‘친문패권주의’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빈 곳은 메운 것은 이른바 ‘외모패권주의’입니다. 대선 과정에서 지긋지긋한 ‘친문패권주의’라는 비난에 시달렸던 문재인 지지자들의 유쾌발랄한 반어법적 패러디입니다. 그들은 외칩니다. “문재인 정부는 패권주의 정부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친문패권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외모패권만이 존재합니다.”
지난 6월 1일 오후 4시 청와대 본관 충무실. 문재인 대통령은 서훈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이후 인왕실로 이동해 문 대통령과 서훈 국정원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들이 환담을 나눴습니다. 참석자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고 앉을 때 누군가가 “저희가 조국 수석 옆에 잘 안 앉으려 한다”고 말해 박장대소가 터졌습니다. 외모패권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곁에 앉았다가 사진이라도 찍히게 되면 나중에 너무 난감하지 않겠느냐는 애교섞인 몸조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외모패권주의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어느덧 새 정부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의 훈훈한 외모를 빗댄 표현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틀째인 지난달 5월 11일 오찬을 마친 문 대통령이 임종석 실장, 조국 민정수석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외모패권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얼굴이 복지다” “안구정화” “얼굴패권주의”라는 표현도 등장했습니다. 아울러 서태지팬클럽 부회장 출신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을 포함시켜서 “꽃보다 청와대” “청와대 F4”라는 말도 유행했습니다.
세계 각국 정상의 외모순위 평가사이트인 ‘하티스트 헤드 오브 스테이트’(Hottest Heads of State)’의 최근 조사도 놀랍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세계에서 가장 잘 생긴 국가원수 톱10에 들면서 7위를 기록했습니다. 1위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2위는 지그메 왕추크 부탄 국왕, 3위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었습니다. 참고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5위, 아베 일본 총리는 50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7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96위였습니다. 아울러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은 최하위인 199위를 기록했습니다.
‘패권주의’는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표현입니다. 특정세력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정당한 절차나 합리적인 방법을 거치지 않고 소수의 세력에게 의사를 강요한다는 의미입니다. 대선과정에서는 친문패권주의라는 비판이 흘러넘쳤습니다. 주로 대선후보 문재인을 공격하기 위한 프레임이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방지하지 못한 ‘친박패권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주장도 쉴 새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제2의 박근혜가 될 것이라는 공격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불과 두 달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면 ‘외모패권주의’라는 단어가 ‘친문패권주의’라는 표현을 대체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민주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문재인을 향해 융단폭격을 퍼부었습니다. “친북 민중혁명가 같다” “안보관과 대북관이 불안하다” “제2의 최순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제2의 박근혜 대통령이 될 것 같다” “당의 패권적 운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등등. 오죽하면 문모닝에서 문나이트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종일 문재인을 비난하는 논평을 쏟아낸다는 의미였습니다. 한마디로 기승전 ‘문재인’이었습니다. 공격의 마지막에는 꼭 ‘친문패권주의’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친문패권주의는 대선 이후 사라졌습니다. 결정타는 인사였습니다. 문재인은 내각과 청와대 인선에서 계파와 관계없이 능력 위주의 탕평인사를 선택했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우선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전해철 민주당 의원 등 이른바 3철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청와대의 주요 포스트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줄줄이 2선후퇴를 선언했습니다. 친문배제도 문재인식 인사의 주요 키워드였습니다. 법무장관 기용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던 전해철·박범계 의원 대신에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이 발탁된 것이 대표적이었습니다.
특히 내각과는 별도로 청와대 참모진만큼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친문인사를 발탁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빗나갔습니다. 청와대 참모진 구성은 문재인·박원순 공동정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서울시 인맥이 대거 진출했습니다. 우선 비서실장 발탁이 점쳐졌던 노영민 전 의원 대신에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의 임종석 전 의원이 비서실장에 발탁됐습니다. 하승창(사회혁신) 조현옥(인사) 김수현(사회) 수석 등 박원순 시장과 함께 일했던 서울시 인맥이 청와대를 장악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안희정계로 분류되는 박수현 전 의원이 청와대의 입에 해당하는 대변인에 낙점된 것도 상징적입니다.
문재인식 파격소통은 친문패권주의라는 패쇄적인 이미지를 씻어냈습니다. 5.18 기념식에서 계엄군에 아버지를 잃은 유족 김소형 씨를 따뜻하게 포옹해준 것은 매우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인천공항, 초등학교, 국방부, 요양병원, 소방서 등 대통령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시민들의 셀카 요청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열린 경호를 강조하면서 시민들과의 소통에 보다 적극적이었습니다. 정권초 이미지 정치의 일환으로 평가절하할 수 있지만 국민들은 진정성을 느끼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는 지지율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대통령의 일부 장관급 인선에 대해 야당은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여론의 80%대 안팎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정당 지지율 조사(6월 9일~10일, 무선 78.4%·유선 21.6% 전화면접, 표본오차 95% 신뢰도에 ±3.0%p) 결과를 보면 보다 더 잘 드러납니다. 53.7%의 지지율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민주당은 호남에서 77.8%를 얻으며 5.4%에 그친 국민의당을 압도했습니다. 또 보수의 심장부인 TK(대구·경북) 지역에서도 38.8%로 13.4%에 그친 한국당을 3배 가까이 앞섰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문재인의 집권초는 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라밖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북핵문제, 한미정상회담, 사드논란, 한일 위안부 합의 등등 난제가 한 둘이 아닙니다. 국내적 상황도 쉽지 않습니다. 여소야대 정국 아래에서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당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임명 문제가 딜레마입니다. 후속 내각인선에 따라 열리게 될 인사청문회 정국도 쉽지 않습니다. 대선 핵심공약이었던 일자리 추경의 통과는 물론 정부조직개편도 시급합니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론을 이기는 정치는 없습니다. 야당이 지금의 태도를 고집할 경우 ‘새 정부 발목잡기’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문재인의 집권초는 문민정부 초기의 지지율 고공행진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내각인선이 마무리되면 이제 진검승부입니다. 정책에서 실력을, 경제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합니다. 다행히 문재인은 강력한 라이벌이 없습니다. 문재인의 상승세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87년 대선 이후 역대 대통령은 집권 기간 내내 강력한 차기 주자들의 집중견제에 시달렸습니다. 노태우는 김영삼과 김대중, 김영삼은 김대중, 김대중은 이회창, 노무현은 박근혜, 이명박은 박근혜, 박근혜는 문재인과 안철수. 그러나 문재인의 라이벌은 사실 붕괴된 수준입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에 이어 2위와 3위를 차지했던 안철수와 홍준표의 정치적 재기와 차기 대선 도전은 사실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오히려 박원순, 안희정, 이재명, 김부겸, 김영춘 등 여권 인사들의 정치적 미래가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아울러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전망이 나쁘지 않은 점도 문재인의 호재입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분열을 고려할 때 수도권 선거에서 보수진영의 승리는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보수통합이 거론될 수 있지만 대선과정에서 홍준표(살인범은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못한다) vs 유승민(강간 미수 공범) 후보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점에서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집권 초기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문재인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호남에서 90% 이상이고 영남에서도 80%대라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할 대목입니다. 문재인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띠게 될 지방선거 승리는 집권 중반기를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든든한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이른바 ‘친문패권주의’라는 표현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