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송길호 기자
2015.12.22 07:05: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모든 정책은 선의(善意)로 포장된다. 각종 복잡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정책수단이 동원된다. 때로는 면피 차원의 미봉책도 등장한다. 하지만 부정확한 진단에 따른 오도된 처방은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와 상황을 악화시키는 법. 실패를 치유하기 위해 대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양산되고 적폐는 깊어지는 모습, 바로 정책실패의 악순환이다.
정부가 또다시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했다. 주택담보대출의 심사기준(담보→소득)과 상환방식(거치식 일시상환 →비거치식 분할상환)의 전환을 통해 전체 가계대출 규모를 줄여나가는 방안이다. 전체 1200조원, 국내총생산(GDP)의 84%로 신흥국 최고수준에 달하는 부채덩어리에 메스를 들이댔지만 이번에도 정책의 실효성을 예단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언뜻 보아도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떨어진다. 신규대출은 물론 위험수위에 있는 집단대출 등 각종 예외조항이 적지 않고 부동산 시장이 상대적으로 과열된 지방의 경우 총선뒤인 5월에나 적용된다. 폭증하는 가계부채를 통제하고 부동산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상충적인 정책 목표, 여기에 정치공학적 변수까지 더해지니 각종 정책 처방전이 누더기로 변질됐다.
근원적인 문제는 접근방식이다. 가계부채는 총량도 문제지만 저소득자· 저신용자 ·다중채무자(3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채무자) 등 일부 취약계층의 미시적 리스크가 더욱 심각하다. 지금과 같은 금리상승기에 총량 규제에 집착할 경우 금융의 사각지대만 깊어지며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빚을 통한 경기부양은 양날의 칼이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만 비용은 분산되며 미래에 교묘히 전가된다. 경기흐름만 잘 타면 단기간내에 부의 효과(wealth effect)로 이어지며 선순환의 흐름으로 연결되니 정부· 은행· 가계 모두 삼위일체 윈윈 게임이다. 반면 경기흐름에 역행하면 자산가격 하락으로 버블붕괴에 직면할 수 있으니 그 대가는 혹독하고 처참하다.
이 때문에 가계부채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누적된 정책실패의 종합판이다. 자산효과와 버블붕괴라는 양 극단, 그 사이에서 진행된 위험한 줄타기의 산물이다. 내수진작을 위해 빚을 권장하다가도 일단 임계점에 도달해 논란이 불거지면 다시 이를 옥죄는 냉온탕 정책의 반복. 여기에 관치의 그늘아래 자생력을 잃어버린 은행의 도덕적 해이가 결합되면서 한국경제의 고질병으로 전락한 거다.
직접적인 해법은 경제의 성장 엔진을 살리는 일이다. 일자리가 창출되고 자연스럽게 경제의 파이가 커지면 부채 총량은 물론 부채 위험군의 리스크도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선 가계부채의 뇌관을 제거할 묘책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대책도 관료들의 생색내기용, 면피성 정책은 아닌지 모른다.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적당한 해법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단기 미봉책을 제시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어차피 대책의 부작용은 후임자의 몫이니 무슨 걱정인가.
본질적으로 정부가 모든 걸 주도해서 해결하려다보니 상황만 더욱 악화된다.가계부채는 은행이 자기책임의 원칙아래 접근해야 할 문제. 당국은 시장 전체의 리스크, 거시경제적 위험관리에 치중하면서 자생적인 질서가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면 될 일이다. 오랜기간 흥청망청 파티를 벌이다 비용청구서가 돌아오면 그제서야 허겁지겁 대책을 마련하는라 부산을 떠는 모습, 한국 금융의 우울한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