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책 다시보기]누리과정 힘겨루기에 워킹맘은 웁니다
by김정남 기자
2015.10.31 08:00:00
여의도 여야 정치권의 정쟁에 숨겨진 정책 이야기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때가 되면 집으로 날아오는 주민세 고지서를 누구나 받아보셨을 겁니다. 자동차세도 일년에 두번 정도 낸 것 같네요. ‘내 집’을 갖고 계신 독자 분이라면 취·등록세와 재산세도 냈을 겁니다. 주변에는 취·등록세를 예상치 못하게 많이 냈다며 울상인 분들도 더러 있더군요. 집을 사면 지방교육세라는 것도 내야 하지요. 그러고 보니 월급명세서에 소득세 외에 지방소득세(소득세의 10%)도 찍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세금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인식하시는 독자 분은 계실까요. 짐작건대 ‘나랏돈으로 잘 쓰이겠지’ 정도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사실 저도 그렇고요. 이 세금들은 모두 ‘지방세’로 분류됩니다. 일부는 광역시청 혹은 도청으로 가고 또 일부는 시청, 구청으로도 갑니다.
흔히 ‘3대 세목’이라고들 하지요.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모두 ‘국세’입니다. 중앙정부가 가져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증여세 상속세 종합부동산세 등도 마찬가지로 국세이지요.
또 한 번 퀴즈인데요. 혹시 ‘2할 자치’라는 말은 들어보셨습니까. 흔히 지방자치단체 종사자들이 푸념과 함께 내뱉는 말인데요.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대략 ‘8대2’라는 데서 유래한 겁니다. 자치(自治), 즉 스스로 다스린다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지방이 가난하다는 불만이지요. 정치인 출신 어느 광역단체장은 “도지사로 와보니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말도 합니다. 중앙정부는 그 대신 국세의 일정금액을 교부금의 형태로 각 지방에 내려보냅니다.
일견 부당해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8대2 비중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지방정부가 완전한 자치, 그러니까 스스로 세금을 거둬 스스로 사업을 한다고 가정합시다. 언뜻 생각해도 부유한 서울과 가난한 시골 농어촌의 격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질 게 뻔합니다. 그걸 국가 차원에서 조정한다는 건 일리가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 측면에서 입니다. 물론 지방에 맡겨놓아도 잘 할 것으로 믿지만, 국가가 결정하고 추진해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지방의 불만이 아예 가라앉는 건 아닙니다. 지방 입장에서는 중앙에서 결정해 돈을 내려보낸 사업에 큰 의욕이 있을 리 없겠지요. ‘내가 돋보일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고 여길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사업을 위해 중앙에서 받은 돈마저 적다면 어떨까요. 교부금은 그해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에 따른 세수(稅收)와 연동돼있어 경기가 침체되면 줄기도 하지요. 교부금이 부족하다면 지방 스스로 빚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불만은 극에 달하겠지요.
최근 여의도 정가를 강타하고 있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 보육·교육)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저는 지난 29일 <선심정치와 무능관료가 빚은 누리과정 후폭풍>이라는 기사를 통해 현재 논란의 쟁점을 짚어드렸습니다. 중앙과 지방이 서로 누리과정 예산을 미루는 형국인데, 제 주변만 해도 반응이 뜨겁습니다. 최근 민간어린이집 휴원 사태 때도 “아이들을 어디다 맡겨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들이 있었습니다.
누리과정은 저출산 대책의 핵심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가가 책임지고 키워주겠다”는 확신이 생길 때 출산율은 1.5명(현재 1.2명)을 향해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중앙에서 결정한 누리과정을 지방에서 집행할까요. 국민연금처럼 정부부처(보건복지부)가 공단(국민연금공단)을 끼고 할 수는 없을까요.
여기에는 점차 다양해지는 복지의 형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처럼 직접 돈을 쥐어주는 복지도 있지만, 누리과정처럼 보육 교육의 형태로 대인 서비스를 전달하는 복지도 있습니다. 노인 요양도 비슷합니다.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후자 쪽이 훨씬 더 어려울 겁니다. 각 지역 사정을 잘 파악하는 지방정부의 적극적 역할론은 그래서 나옵니다. 현재 지방의 복지정책은 상당수 중앙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집행한다고 보면 됩니다.
문제는 중앙이나 지방이나 서비스 형태의 복지 역시 ‘기계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중앙정부의 문제가 심각해 보입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 나와 누리과정 논란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국가와 지방이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법적 근거 때문에 그렇게(누리과정은 지방에서 예산을 편성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상 지방교육청은 중앙에서 내려온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국세의 20.27%)을 통해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방교육청은 시행령 규정이 상위법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 부총리의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앙에서 시행령 규정만 들며 지방을 누를 일이 아닙니다. 보육 교육 요양 같은 복지는 돈(중앙정부)도 중요하지만 실제 전달주체(지방정부)의 서비스 품질도 중요합니다. 중앙과 지방의 협업이 필수라는 겁니다. 게다가 누리과정을 ‘시대적 흐름’으로 판단한 결정기관은 중앙이고, 그 결정을 이어받은 집행기관의 수단(교부금)에 문제가 생겼다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요.
더 중요한 건 국민들은 자신이 내는 세금이 국세인지 지방세인지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중앙이 하든 지방이 하든 좋은 복지를 제공 받길 바라는 겁니다. 이번 논란이 행정당국간 한심한 힘겨루기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덧붙여 중앙정부는 ‘2할 자치’의 의미도 잘 새기면 좋겠습니다. 8할을 챙기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그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복지사업을 감당하느라 지방이 빚더미에 앉으면 안 될 일입니다. 출산은 꺼리지만 노인은 늘어가는 시대이지요. 중앙과 지방간 복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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