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심은 함열이어라’…삼부자 낸 동네 담장을 거닐다
by강경록 기자
2020.05.29 05:00:00
전북 익산 함라마을의 골목길을 거닐다
너른 들판, 울창한 숲 사이 그림같은 마을
허물어질 듯 흙담장 걸으니 시간여행 온듯
마을어귀 조해영 가옥엔 대문만 열두개
전북에서 제일 크다 소문난 김병순고택
황토 담장 수수한 듯 멋스런 이배원 가옥
| 전북 익산 함라마을의 황토색 담장. 세 부잣집 담장이 이웃집 담장과 황토색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
|
[전북 익산=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풍속은 화순이요 인심은 함열인디, 기초는 무주허고 서해는 영광이라.’ 호남의 여러 지명을 넣어 만든 ‘호남가’의 한 대목이다. 함열은 전북 익산의 지명이다. 익산에는 함열이라는 이름을 쓰는 곳이 두 곳이다. 한 곳은 함열읍, 또 다른 곳은 함열리이다. ‘호남가’에서 노래한 함열은 어디일까. 정확하게는 함라면 함열리이다. 함라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기 전까지 함열현과 함열군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일제강점기에 기차역이 들어설 당시 역 이름을 함열로 쓰면서 함열읍으로 발전했고, 함열리의 함열은 조용하게 잊혔다. 그렇다면 ‘인심은 함열’이라는 가사는 어떻게 불리게 된 것일까. 그 답을 찾으려면 함열리의 함라마을에서 찾아가야 한다.
| 전북 익산 함라면사무소 옥상에서 바라본 함라마을 전경 |
|
◇돌담의 운치가 가득한 ‘함라마을’
허물어질 듯한 흙 담장, 바스러질 것 같은 낡은 슬레이트 지붕, 색 바랜 기와, 얽히고 설킨 전깃줄 …. 시골마을의 낡고 오랜 풍경이다. 낡은 공간이 주는 쓸쓸하지만, 기분 좋은 외로움이다. 친구와 함께 뛰놀았던 골목길, 낙서했던 담벼락, 여전히 커서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느티나무도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함라마을은 널찍한 들판과 울창한 숲 사이에 들어앉은 그림 같은 시골마을이다. 돌담의 운치가 넘치는 전통마을로, 찾는 이가 드물고 조용하고 한적하다. 비교적 손을 덜 대 옛 마을 분위기가 살아 있다. 1시간 남짓이면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다.
| 익산 함라한옥마을의 주인공은 한옥이 아니라 황토색 담장이다. 1km가 넘는 세 부잣집 담장이 이웃집 담장과 황토색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
|
함라마을의 들머리는 파출소. 마을은 파출소 옆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돌아보기 좋은 규모다. 흙담, 돌담, 화강암 담장까지 다양하고, 직선과 곡선으로 휘어진 골목마다 느낌이 달라 취향대로 인증 사진을 찍어도 좋을 정도다. 이 마을의 자랑거리는 삼부자집으로 통하는 고택과 고택을 두르고 있는 돌담이다. 토석담과 토담을 비롯해 전돌을 사용해 동물과 식물을 새긴 화초담까지 그윽한 정취의 담장을 두르고 있다. 마을로 들어서 한 집 한 집 들여다보면 마을의 매력이 드러난다.
삼부자집은 만석꾼 김병순, 조해영, 이배원의 가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지주였다. 당시 전국 90여 명의 만석꾼 중 이 마을에만 3명이 있었던 셈이다. 세 만석꾼 외에도 천석꾼이 4명, 백석꾼은 20여명 더 있었다고 한다. 어머어마한 부자동네였던 셈이다. 웬만한 부자는 이 마을에서 명함도 못 내밀었을 정도다.
마을 골목의 중심은 삼부자집 담장이다. 이들 집이 얼마나 큰지 담이 마을길이되고, 골목을 만들었다. 삼부자집 담장을 끼고 한 바퀴 돌면 얼추 동네 한 바퀴를 다 도는 셈이다. 마을 골목은 삼부자집에서 시작해 삼부자집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부자집에서 시작해 삼부자집에서 끝나다
본격적으로 마을을 둘러볼 차례다. 파출소 옆 마을 어귀에 버티고 선 조해영 가옥은 1918년 지었다. 집이 얼마나 큰지 대문만 열 두개였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도 ‘열두대문집’이다. 당시 광산이나 농장, 방직회사에 투자해 돈을 벌었다고 한다. 지금은 본채는 헐리고 안채와 별채, 문간채만 남았다. 그럼에도 엄청난 규모의 정원과 연못, 돌담의 흔적은 아직 남아 이 집의 옛 영화를 전하고 있다. 조해영 가옥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헛담인 꽃담이다. 헛담은 집안 여성을 위해 안채를 가리는 용도다. 꽃담 바깥벽은 경복궁 자경전의 십장생굴뚝을 본떠 만들었고, 안벽은 붉은 벽돌로 흙 돌담으로 쌓았다.
| 전북에서 가장 크다는 김병순 고택. 길가에 세워진 담장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
|
조해영 가옥 돌담을 따라가면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김병순 고택이다. 1922년에 지은 이 고택은 전북에서 제일 크다고 소문난 집. 세 집 중 유일하게 국가민속문화재에 이름 올렸다. 관광객에게 내부를 개방하지 않는다. 담이 높고 문도 굳게 닫혀 있어 집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다. 그래도 길가에 세워진 담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대문을 중심으로 양편에 굴뚝과 어우러진 점선무늬 회벽꽃담이 있다. 조해영 가옥 쪽으로 내려가면 붉은 벽돌 점선무늬꽃담이 있다. 아랫단은 일반적인 흙 돌담으로 쌓았고, 윗단은 붉은 벽돌로 점선무늬를 냈다. 다른 곳에서는 볼수 없는 인상적인 담이다. 함라노소로 꺾어진 곳은 곡선으로 부드럽게, 길게 뻗은 골목담은 직선으로 올곧게 쌓았다.
이배원 가옥은 삼부자집 중에서 가장 일찍 지었다. 안채는 원형이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사랑채 일부는 원불교 교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길게 휘어진 흙 돌담은 그대로 남아 예전 이 집안의 ‘왕년가세(往年家勢)’를 자랑하고 있다. 내부 담장을 사이에 둔 옆집은 솟을대문은 그대로지만, 슬래브 주택으로 개량했다. 대신 후원으로 나가면 황토 담장을 두른 넓은 정원과 텃밭이 펼쳐진다. 이 집 담장은 수수하면서 고급스러운 황토 담장이 전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삼부자는 베푸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보릿고개나 흉년이 들면 정보 빠른 전국 걸인들이 모여들고 소작거리 없는 소작인들은 겨울에 함열로 몰려들었을 정도. 삼부자는 이들을 내치지 않고 기꺼이 거두어들였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진정한 부자였던 셈이다. ‘인심은 함열’이라는 호남가의 가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여행정보
△가는길= 대중교통을 타고 간다면 고속열차(KTX)를 타고 가는 게 가장 빠르다. 용산역에서 익산역까지 1시간 8분 정도 걸린다. 익산역에서 38번 버스를 타고 함라초등학교에서 내리면 함라마을이다.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호남고속도로 익산나들목으로 나오면 바로 익산시 왕궁면이다. 여기서 720번 지방도를 타고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를 지나 30여분 정도 가면 함라마을이다.
△잠잘곳= 함라마을에는 숙박과 각종 전통 체험이 가능한 함라한옥체험마을이 있다. 익산 시내에는 호텔, 모텔 등의 다양한 숙소가 있다. 호텔은 웨스턴라이프호텔, 익산그랜드팰리스호텔, 익산비즈니스관광호텔 등이 있다. 이중 웨스턴라이프호텔이 가장 시설이 좋다.
| 이배원 가옥의 사랑채는 현재 원불교 교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