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도, 막걸리도 비틀···‘낡은 주세법'에 쪼그라드는 주류업계

by강신우 기자
2018.06.14 06:00:00

7월부터 유럽연합(EU)산 맥주 무관세 수입
값싼 수입맥주에 업계, 경쟁력 약화 우려
탁주 제조기법도 법으로 강제, 다양성 훼손
“종량제로 주세법 바꾸는 등 규제 완화해야”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미국에 이어 7월부터는 유럽연합(EU)산 맥주에도 무관세가 적용되면서 국산 맥주는 설 자리가 없게 됐다.”

“전통주라고 불리는 ‘탁주’를 요즘 트렌드에 맞게 향 첨가라도 하면 막걸리 취급을 받지 못한다.”

주류업계가 ‘낡은 주세법’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업계나 시장의 현실에 뒤떨어진 제도 탓에 사면초가 상황에 직면했다는 이야기다. 무관세 수입 맥주로 국산 맥주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고, 막걸리 등 전통주는 제조까지 법으로 강제해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는 제품을 개발, 제조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13일 관세청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량은 33만1211톤(t)으로 전년(22만508톤)에 비해 50%가량 늘었다. 연도별로 보면 2013년 9만5210톤, 2014년 11만9500톤, 2015년 17만919톤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다양한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혼술·홈술족을 겨냥하며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는 이미 수입맥주 판매량이 국산맥주를 넘어섰다.

스페인의 필스너 계열 유사맥주 버지미스터. 세븐일레븐은 최근 버지미스터 수입맥주 4캔을 5000원에 선보였다. (사진=세븐일레븐)
국산과 수입산 맥주의 가격 차이는 세금을 어디에 붙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국산 맥주는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 이윤 등을 모두 붙인 순매가에 제조원가의 72%와 주세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를 매긴다. 반면 수입맥주는 이윤 등을 제외한 공장출고가와 운임비 등을 더한 수입 신고가에 같은 세율을 부과한다. 다만 수입 신고가는 말 그대로 해당 업체에서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에 싸게 매길수록 세금도 덜 낼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현행 주세법이 가격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는 종가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결국 재료비나 판관비 등이 훤히 드러나는 국산 맥주는 가격경쟁력에서 수입 맥주에 밀릴 수밖에 없다. 이는 국산 수제맥주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주세법 개정으로 지난 4월부터 양조장만 있으면 수제맥주를 만들어 유통채널에 납품할 수 있도록 제조업 시설 기준이 완화됐지만 수입 맥주에 역 차별당하는 상황이 됐다.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는 “(주세법과 관련해) 수입맥주에 유리한 주세구조는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주세법은 종가제인데 (알코올 도수나 맥주 용량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제로 바뀌어야 공평하다”고 말했다.

다만 알코올 도수에 비례해 계산하는 종량세 도입 방안은 서민 술인 소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정부로선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통주 업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제조기법마저 너무 일괄적으로 강제하는 것 아니냐는 것. 이를테면 국순당은 바나나 맛 막걸리를 내놓고도 제품명에 ‘막걸리’를 붙이지 못했다. 바나나 향을 첨가했기 때문인데 주세법상 탁주에는 농산물 원액만을 사용해 막걸리의 맛과 향을 내야 한다. 그러나 업체 측은 과일 맛을 내기 위해서는 농산물 원액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향을 첨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국순당 쌀 바나나.(사진=국순당)
다른 기법을 쓰면 탁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이렇게 되면 주세는 기존 5%에서 30%로 뛰고 기존의 거래처인 특정주류도매업자가 이를 받아 팔수도 없다. 종합주류도매업자로 판로가 바뀐다. 세금은 더 내고 기존 유통망마저 잃어버리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막걸리도 트렌드에 맞게 다양한 맛을 내야 내수시장이 활성화하고 세계화도 할 수 있는데 기존 제조기법만을 법으로 강제하다 보니 생산업체들도 신제품 개발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주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현행 주세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