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난에 '깡통전세' 될라…전세보증보험 가입 급증

by권소현 기자
2018.04.27 05:30:00

그래픽=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직장인 황모 씨는 작년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았다. 2020년 5월 입주 예정이라 현재 사는 전세계약을 연장하면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했다. 전세 만기가 되면 보증금을 받아 잔금 치르고 입주해야 하는데 최근 일부 지역에서 역전세난이 발생한 것을 보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일종의 보험에 가입한 것이다. 전세 만기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다음 세입자를 못 구해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아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전세시장 상황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전세값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 발생 우려감이 커지면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사례가 늘고 있다. 전세계약이 만료됐는데도 다른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이사를 못하거나, 집값 하락으로 집이 팔려도 전세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되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주택’으로 전락한 경우에도 전세보증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등 절차가 완화된 점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이 늘어난 요인으로 꼽힌다.

27일 HUG에 따르면 지난달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세대는 7635세대, 금액은 1조743억원으로 각각 전월 대비 16.9%, 18.9%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월평균 가입 세대 3660세대, 가입금액 7911억원과 비교해도 상당히 많은 수준이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상품이 출시된 2013년에는 451세대, 765억원 가입하는데 그쳤지만 2014년에는 5884세대, 1조587억원으로 늘었고 2016년에는 2만4469세대, 5조1716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하더니 2017년에는 4만3918세대, 9조4931억원으로 가입금액만 10조원 수준으로 뛰었다.

올해 1분기(1~3월)에만 1만8516세대, 4조843억원을 기록해 이같은 속도라면 올해 다시 최대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GI서울보증보험에서 판매하는 전세금보장신용보험 가입건수와 가입액 역시 지난 3월 2593건, 4527억원으로 1~2월 월평균 1813건, 3111억8400만원에 비해 각각 43%, 45% 증가했다.

이처럼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이 늘고 있는 것은 전세값 하락에 따른 불안감이 커진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3일까지 전국 아파트 전세값은 1.12% 하락했다. 특히 울산은 3.16% 떨어졌고 경북·경남지역 전세값도 2% 이상 내려 역전세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서울도 0.41% 하락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고 가입 절차가 간편해진 것도 가입자 수가 늘어난 이유다. 초기에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려면 집주인의 확인을 받아야 했지만, 집주인이 동의하지 않거나 눈치가 보여 가입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자 정부가 이 절차를 폐지했다. 또 신청부터 가입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대폭 줄이고 보증가입 대상 보증금 한도도 상향조정하면서 대상을 늘렸다.

이렇게 보증보험 가입이 늘면서 HUG에 전세보증금을 신청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전세금반환보증 상품 출시 첫해인 2013년과 이듬해인 2014년에는 보증 사고 발생 건수가 한 건도 없었지만 2015년에는 1건, 1억원이 접수됐고 2016년 27건, 36억원에 이어 작년에는 33건, 74억원으로 증가세다. 올해 1분기에는 70건, 138억원이 접수됐다.

영등포구 당산동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입자들이 부쩍 많아졌다”며 “집주인도 세입자가 보증에 가입한다고 얘기해도 크게 반발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