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nd SRE]대우조선, '환희의 송가' 부를 줄 알았지만

by김도년 기자
2015.11.25 06:05:00

22회 SRE 워스트레이팅 2위…“‘어닝 쇼크’ 충격 컸다”
산은·수출입銀 4.2조 지원…신평사 “추가 지원 없이 존속 가능한 지 살펴볼것”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2015년의 봄은 대우조선해양에는 한겨울이었다.

직전연도까지 별도 재무제표 기준 4500억원대 영업이익 흑자를 내던 회사가 갑자기 올해 상반기 3조 1200억원의 적자를 발표하면서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됐고 투자금을 잃은 소액주주들의 소송이 이어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대우조선의 부실을 방치한 대주주 산업은행의 책임을 묻는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져 나왔다.

올 2분기에 1조원대 손실을 반영한 해양플랜트 ‘송가(Songa)’ 프로젝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어 ‘환희의 송가(頌歌)’를 부르게 될 줄 알았지만 유가 하락 속 발주처의 인도 지연으로 통한의 비가(悲歌)가 울려 퍼지고 있다.

22회 SRE 기업별 신용등급 적정성 평가(워스트레이팅)에서 대우조선은 전체 159명의 응답자 중 23.9%(38명)의 선택을 받아 2위에 올랐다. 크레딧애널리스트 집단 안에서도 20.6%(13명)가 대우조선을 선택해 2위를 기록했다.

SRE 워스트레이팅이란 국내 신용평가사가 부여한 신용등급이 실제 기업의 펀더멘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을 뽑은 설문 결과다. SRE 자문위원은 “응답자들이 대우조선의 부실 위험을 더 크게 느꼈고 현재 등급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설문 당시에는 명확한 부실 처리 방향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던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빅3 대형 조선소들이 올해부터 대규모 손실을 반영하게 된 원인은 주로 송가 프로젝트와 같은 해양플랜트 관련 손실 때문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역거래 규모가 줄자 상선 발주가 줄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너도나도 해양플랜트에 뛰어들면서 저가 수주,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의 불리한 계약 등을 국내 조선사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해부터 국제 유가가 하락한 것은 해양플랜트 설비를 계약한 발주처들이 하자 등을 이유로 완제품 인도를 미루게 된 원인이 됐다. 유가가 높았을 때는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해양플랜트 설비를 가져가려고 하는 분위기였지만, 유가 하락으로 채산성이 떨어지자 어떻게든 다시 유가가 오를 시점까지 버텨보기 위해 인도 시점을 늦추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 입장에선 공사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원가 상승으로 인한 손실이 터져 나오게 된 것이다.

특히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보다 해양플랜트 공사를 수주한 시점이 다소 늦었다. 현대중공업은 2011년부터 공사를 수주해 지난해 2분기와 3분기에 각각 1조 1000억원과 1조 9000억원대 영업적자를 냈고 삼성중공업은 주로 2011년과 2012년에 수주, 지난해 이익 규모가 줄었다가 올해 2분기에 1조 5000억원대 영업적자를 냈다. 2012년부터 해양플랜트에 뛰어든 대우조선은 이제서야 대규모 적자를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3조원대 적자를 놓고 대우조선에 대한 분식회계 의혹이 소액주주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제기됐다.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산업은행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분식회계 적발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대우조선의 분식 가능성을 최고등급(5등급)으로 평가하고도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자산인 매출채권과 재고자산, 선급금 등은 늘어나고 돈을 내줘야 하는 부채, 매입채무 등은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 점을 놓고 대우조선이 이익을 부풀린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또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 등 해외 자회사에서 손실이 누적돼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음에도 모회사 대우조선이 해외 자회사 등에 제공한 지급보증과 선수금 환급보증(RG) 등 신용공여액에 충당금을 설정하지 않아 손실을 누락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우조선은 그러나 이 같은 정상적인 수주기업의 회계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회계절벽’ 현상일 뿐, 분식회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RG는 일종의 보증으로 조선소가 망해서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자본잠식 사실이 있었다고 해서 곧바로 손실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공사가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고 공사가 마무리되고 선박이 인도되면 RG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아직 대우조선에 대한 분식회계 감리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경영 정상화 방안 수립을 위해 대주주 산업은행이 삼정회계법인에 의뢰, 실사 결과를 살펴본 뒤 회계감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올해 상반기 대규모 손실과 함께 앞으로도 추가 손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은행은 신규 출자(유상증자)와 신규 대출, 기존 대출의 출자전환 등으로 4조 2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해양플랜트 공정 지연과 원가 상승, 드릴십 건조계약 취소 등으로 올해 안에 1조 8000억원, 내년 상반기까지 누적으로 최대 4조 2000억원 규모의 자금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 따른 조치다.

산업은행이 2조 6000억원, 수출입은행이 1조 6000억원을 지원하면 내년 말까지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420%까지 낮아질 수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776% 수준이지만 자금 지원이 없으면 4000%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편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이 같은 조치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일이라는 비판도 있다. SRE 자문위원은 “4조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을 출자전환하게 되면 남은 채권자들로부터 빌린 돈은 갚아주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독박을 쓰게 되는 엄청난 도덕적 해이”라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선수금 환급보증이 해지되는 데 따른 다른 채권은행들의 손실을 국책기관들이 떠안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들은 대우조선의 해양플랜트 관련 손실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장기매출채권도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장부가액 7000억원 중 50% 이상은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해외 자회사 등 종속회사 구조조정에 따라 지급보증, 신용공여 등에서도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대우조선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현재 ‘BBB 하향검토’로 투기등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기 위해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지원 이후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이냐가 중요하다. 한 신평사 연구원은 “앞으로 1~2년 뒤에도 정부 추가적인 지원 없이 계속해서 회사를 영위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