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종오 기자
2015.02.14 07:19:30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건설사들의 못 믿을 회계 처리 방식이 또 다시 논란입니다.
이번에 도마에 오른 것은 GS건설(006360)입니다. 어떤 사안인지부터 볼까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2부는 개인 투자자들이 GS건설을 상대로 낸 집단 소송을 13일 허가했습니다. 발단은 이 회사의 들쭉날쭉한 경영 실적이었습니다. GS건설은 2013년 3월 29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2012년 영업이익 약 1603억원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2일 뒤 “플랜트 건설 공사의 원가율 악화로 2013년 1분기에 영업손실 5354억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잠정 실적을 공시한 것입니다.
투자자들 주장은 “GS건설이 먼저 공시한 사업 보고서를 보고 이 회사 주식을 샀다. 그런데 잠정 실적 공시 이후 주가가 크게 떨어져 손해를 봤으니 피해액 4억 26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처럼 해외 사업에서 갑자기 대거 적자를 낸 것이 GS건설 만은 아닙니다. 대림산업(000210), 삼성엔지니어링(028050)도 비슷한 방식으로 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한 전례가 있습니다. 조금 다른 사례이긴 하지만 대우건설(047040)과 한신공영(004960)도 분식 회계(window dressing) 논란이 일었죠.
궁금합니다. 왜 유독 건설업계에서 이런 일이 자주 불거질까요? 여기엔 건설사 만의 독특한 회계 처리 방식이 숨어있습니다.
재미있는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요즘 ‘솔로대첩’ 같은 이벤트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소개팅 회사를 차렸다고 가정해 보죠. 회원들이 가입비를 냈습니다. 이게 제 수익일까요? 회계사들은 “아직은 아니다”라고 할 겁니다. 돈 받는 시점이 아닌, 제가 고객에게 저의 의무를 다하고 돈 받을 권리가 생겨야 비로소 수익이 발생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이걸 회계 용어로 ‘발생주의’라고 합니다. 즉, 가입비 받고 소개팅까지 시켜줘야 수익으로 인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건설사는 이 기준을 적용하기가 애매합니다. 제품 생산이 오래 걸리는 수주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원칙대로라면 아파트나 석유 공장 등을 2~3년에 걸쳐 다 짓고 발주자에게 인도하는 시점에 관련 매출을 실적에 반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경영 실적이 엉망이 되겠죠. 공사 기간 동안 받은 선수금 등이 줄곧 부채로 잡히다가, 준공 시점에 갑자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확 늘어나는 등 실적 변동성이 커질 테니까요.
그래서 2011년 국제회계기준을 국내에 도입할 때 이런 점을 감안해 예외를 두기로 했습니다. 건설사 등이 ‘공사 진행률’에 따라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미리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완공 전에도 공사를 얼마나 진행했는지에 따라 미리 매출을 잡도록 길을 열어줬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A건설사가 중동에서 1조원짜리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습니다. 이 회사는 공사 완성까지 8000억원(공사 예정 원가)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공사는 얼마나 진행했고, 매출은 얼마만큼 발생했는지 계산하기 위해 비용을 미리 가정한 것입니다. 만약 A사가 1년 동안 원가 2000억원을 투입했다면 공사 진행률은 25%로 추정합니다. 공사를 4분의 1 정도 진행했으므로 이 기간 매출은 2500억원, 이익(매출액-원가)은 500억원이 발생했다고 회사는 실적을 발표할 겁니다.
문제는 이게 다 ‘추정치’라는 점입니다. 떡 줄 사람(발주처)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셈이랄까요. 쉽게 말해, 이 공사의 원가가 8000억원이 아니라 실제로는 1조 1000억원이라고 가정해보죠. 하지만 A사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3년간 매년 매출액 2500억원과 이익 500억원을 회계 장부에 이미 반영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사 마지막 해에 이 사업으로 1000억원의 손실을 볼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리 반영한 3년 동안의 이익 1500억원을 포함해 총 2500억원을 한꺼번에 손실로 처리해야 합니다. 애시당초 추정한 공사 예정 원가의 원가율(매출액 대비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도 80%에서 110%로 급증하겠죠. GS건설을 비롯해 ‘어닝 쇼크’(시장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을 발표하는 것)를 냈던 건설사들이 한결같이 해외 시장의 원가율 조정에 따른 손실 발생을 대규모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했던 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보죠. GS건설과 개인 투자자 간 앞으로 벌어질 소송의 쟁점은 ‘허위 공시’ 여부입니다. 다시 말해 이 회사가 기업 회계 기준의 틀을 벗어나서 자의적으로 실적을 과대평가한 것이 맞느냐는 부분입니다.
회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판단에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이번 건이 분식 회계에서 비롯한 허위 공시라면 결국 회사가 처음 공사를 수주할 때부터 적자 사업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회계 기준 자체가 지금처럼 느슨하게 짜여진 상황에서는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