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건 알아야해]‘베트남 아내 폭행’…이주 여성들의 눈물

by최정훈 기자
2019.07.13 08:47:00

전남 영암 ‘베트남 출신 여성 폭행’ 피의자 구속 송치
다문화가정 폭행 검거, 올해만 427명…매해 늘어나
결혼 이주 여성 체류권 의존에 신고도 꺼려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A(36)씨가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지난 4일 전남 영암에서 오후 9시부터 3시간 동안 베트남 출신 아내를 폭행한 남성이 구속돼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이 남성은 아내에게 치킨을 시키라고 했는데 베트남 닭 요리를 했다는 이유로 주먹과 발, 소주병으로 무차별 폭행해 아내는 전치 4주 이상의 부상을 입혔습니다. 아내는 증거가 없으면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동영상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공분이 일었고 이주여성들의 인권 문제가 다시금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이 알려진 2분 33초 분량의 영상에는 두 살 배기 아기 앞에서 남성이 권투를 하듯 주먹으로 수차례 여성의 머리와 얼굴을 때리고 발로 차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이 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지만 정작 이주 여성들은 한숨을 쉬며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합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다문화가정 내 폭력으로 경찰에 검거된 인원은 총 427명으로, 이 가운데 159명은 기소됐고 168명은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됐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모두 523명이었습니다. 다문화가정 내 폭력으로 검거되는 인원은 최근 몇 년 새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806명에 그쳤던 이 수치는 2016년 1010명, 2017년 918명, 2018년 1340명으로 점차 늘어났습니다. 특히 피해자를 국적별로 살펴보면 중국(조선족) 국적을 가진 인원이 지난해 기준 30.6%로 가장 많았고 △베트남(24.1%) △중국(한족, 9.2%) △필리핀(7.0%) 등 한국보다 생활수준이 비교적 낮은 국가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을 경험한 이주여성들은 검거 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외부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2017년 이주여성 성폭력 상담 현황을 보면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상담 중 성폭력 피해 관련 상담은 전체의 3%에 그쳤습니다. 인권위 조사에서도 가정 폭력 경험 이주 여성의 31%는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유는 결혼 이주 여성의 체류권이 배우자에게 종속돼 있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에서는 결혼이민을 한 지 1년째에 비자 연장을 하거나 2년째 영주권 신청을 하려면 한국인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요합니다. 국제결혼의 대부분이 중개업체를 통해 속성으로 이뤄져 혼인파탄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죠.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 아내를 추방할 권력을 가진 것 입니다. 남편이 사망·실종되거나 남편의 잘못으로 이혼하면 국내에 머물 수 있지만 외국인인 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행법에 대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시정 권고를 내리기도 했지만 아직 변화는 없습니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10일 결혼이민자들과 체류권 문제 해결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법무부는 이를 통해 한국인 배우자가 결혼이민자의 체류연장 등 과정에서 자신의 지위를 일방적으로 행사에 피해자가 발생하는 방안을 찾을 계획입니다. 또한 같은 날 대법원은 이정표가 될 수 있는 판결을 내놨습니다. 대법원은 결혼 이주여성이 이혼했을 경우 이혼에 대해 남편의 책임이 더 크면 해당 여성의 체류자격을 연장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상담기관의 활성화와 함께 체류권 의존 문제의 빠른 해결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기관을 모르는 경우도 많아 기관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절실하지만 결국 체류권 의존 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미국의 경우 가정 폭력을 당한 이주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VAWA 자기청구권으로 이주 여성을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VAWA 자기청구권은 배우자에게 학대당하는 이주여성에 대해 가해 배우자의 도움 없이 영구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결혼 이주민을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스리랑카 출신 한국인이자 이주민 여성 자립단체 ‘톡투미’ 대표인 이레샤 페라라씨는 “이번 사건은 이주민 여성 문제를 넘어 폭력적인 남편·아동 학대·미흡한 신고 등 사회적인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이주민을 어떻게 한국에 적응시킬 지보다 한국 사회가 어떻게 이주민을 보고 보고 있는 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