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 맥스' 악재로 휘청이는 보잉…운항중단에 주가 폭락
by이준기 기자
2019.03.13 06:56:20
美항공당국-보잉의 "안전" 주장에도…공포 확산
주요 유럽국가도 가세…전세계 20여개국 운항 중단
피소 불가피..결험 확인 땐 보험금까지 부담할 수도
주가 이틀째 폭락…사전물량 5천대 인도 ‘미지수’
트럼프, 보잉 CEO와 통화…상원, 청문회 개최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불과 넉 달여 만에 두 차례의 ‘승객 전원 사망’이라는 치명적 사고를 낸 세계 1위 항공기 제조회사인 보잉사(社)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사고 기종인 최신형 ‘B737 맥스(MAX) 8’의 안전성에 의문이 증폭되면서 세계 각국이 이 기종에 대한 운항 중단을 잇달아 선언하면서다.
이미 주가 폭락 등 보잉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만약 기체 결함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천문학적 보험금 지급은 물론, 희생자 가족들에 의한 피소도 불가피한 만큼, 일각에선 기업 존립마저 위태로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아직 조사 초기 단계임에도, 이례적으로 보잉이 자발적으로 기체 개량 작업에 돌입한 배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려를 표명하고, 미 의회는 청문회 개최를 밝히는 등 미국 전체가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2015년 11월 처음 생산돼 2017년 5월 민간항공사에 인도된 최신형 기종 보잉 737 맥스는 보잉의 베스트셀러인 B737 기종의 4세대 모델이다. 연료 효율이 높아 주로 저비용 항공사 등이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미 지난 1월까지 47개 항공사에 350개 항공사에 인도됐고, 사전계약 물량만 5000대를 넘어섰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탑승자 189명 전원이 숨진 라이언에어 사고 이후 채 5개월도 안 돼 벌어진 지난 10일 탑승자 157명 전원이 숨진 에티오피아항공의 사고 기종 모두 보잉 B737 맥스로 밝혀지면서 안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B737 MAX는 규모에 따라 7·8· 9·10 등 4가지로 구분하는데, 이번 두 사고를 낸 기종은 모두 ‘B737 맥스 8’이다.
실제로 두 사고는 상당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이륙 13분(라이언에어), 이륙 6분(에티오피아항공) 만에 여객기가 추락했으며, △모두 이륙 직후 급상승·급강하를 반복하면서 고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조종사가 회항 및 착륙을 시도했다는 점 등이다. 승객들은 물론, 승무원, 조종사들까지 나서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미국 항공사 승무원 5만명 이상이 속한 항공승무원연합(CWA)은 미국 항공당국인 연방항공청(FAA)에 이 기종의 조사를 정식으로 요구했다. 아르헨티나 조종사협회도 회원들에게 안전 운항이 보장될 때까지 ‘아에로리네아스 아르헨티나스’ 소유 5대의 사고 기종을 조종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그 결과 사고 사흘째인 12일(현지시간) 현재까지 운항 중단을 결정한 국가는 20여 개국을 넘어섰다. 첫 스타트는 중국이 끊었다. 중국 항공사들은 10일부터 이 기종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중국항공·중국동방항공·중국남방항공 3대 항공사가 보유한 737 맥스 여객기는 40대가 넘는다. 중국의 보잉 B737 맥스 주문량은 전 세계 주문량의 20%를 차지한다. 사고가 발생한 에티오피아항공도 이 기종의 운항을 중단시켰으며, 말레이시아도 같은 조처를 했다. 호주와 싱가포르는 물론, 이날엔 프랑스·영국·독일·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국가들도 가세했다. 한국도 이 기종을 보유한 이스타항공에 13일부터 잠정 중단을 지시한 바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해당 기종을 서비스 노선에서 배제한 항공사는 전 세계적으로 25개에 달한다고 썼다.
아직 미국과 보잉 측은 여전히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FAA는 전날(11일) 성명을 내어 B737 MAX 기종과 관련, ‘현재까지는’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airworthy) 기종”이라고 주장했다. 보잉사의 데니스 뮐렌버그 최고경영자(CEO)는 “B737 MAX의 안전성과 이를 설계하고 생산한 사람들을 신뢰한다”고 했다.
NYT는 “B737 맥스 8을 가장 많이 보유한 3대 항공사들은 여전히 이 기종을 운항 중”이라고 전했다. 사실상 미국만이 이 기종을 운항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보잉은 이 기종 전반에 대해 조종제어 소프트웨어를 대폭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항공기 1대당 1시간가량의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내달 말까지 개량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피해 보상금 및 보험금 청구 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일단 이번 에티오피아항공 추락 사고로 보잉의 보험사가 내야 할 파손 비행기 보험금만 50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미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 만약 비행기록 및 음성교신 등의 사고 조사 결과 기체 결함이 명백할 경우 보잉이 이 보험금을 부담해야 한다.
유족들의 소송 규모도 천문학적으로 커지게 될 수 있다. 이미 5000대 이상 받아놓은 MAX 기종 사전물량이 온전히 인도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기종에 대한 사전물량이 향후 보잉 전체 사전물량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한다”며 “이는 연수익의 40% 수준”이라고 썼다. 보잉의 주가는 전날 5% 넘게 빠진 데 이어 이날도 6% 이상 폭락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우려를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항공기가 너무 복잡해져 비행을 할 수가 없어지고 있다”며 “파일럿은 더는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 과학자들이 필요하게 됐다”고 적었다. 첨단 비행시스템이 오히려 사고를 촉발했을지 모른다는 주장인 셈이다.
로이터통신 등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 후 뮐렌버그 CEO와 통화를 했으며, 그로부터 해당 기종에 대한 안전성을 재차 확인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와 별도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참모들과 보잉 관련 회의를 열 것으로 전해졌다. 의회도 움직일 태세다. 상원의 항공·우주 분과위원장인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텍사스) 의원은 이날 보잉 청문회 개최 계획을 밝혔다. 밋 롬니(공화·유타)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매사추세츠) 상원의원 등은 FAA 측에 해당 기종의 운항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