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손 놓은 정부 대신 구체제 목소리 대변한 혁신업계

by김형욱 기자
2018.10.29 06:00:00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24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 열린 ‘경제 라운드 테이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공유경제 기반 조성을 위한 분야별 플랫폼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업계 관계자들과 논의했다.


[세종=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혁신도 중요하지만 혁신이 자신의 일자리를 뺏어갈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과 상생해야 한다는 내용도 꼭 함께 전해 주세요.” 지난 24일 열린 플랫폼 경제 라운드 테이블. 알고 지내던 한 참가자가 행사 후 전화로 당부했다.

의외였다. 정부가 공유(플랫폼)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관련 업계의 호소를 듣는 자리였다. 자연스레 정부가 만들어놓은 각종 규제를 성토하는 장이 예상됐다. 구체제의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혁신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룰 법했다. 그러나 혁신을 대변하는 공유업계가 오히려 구체제를 이해한다며 그들의 일자리를 보호해 달라고 읍소하는 역설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현장에서 하도 설득하러 다니다 보니 오히려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된 모양새다.



업계의 노력이 무색하게 정부는 정작 구체제의 반발을 핑곗거리 삼아 손 놓고 있던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정부가 나 몰라라 하는 동안 오히려 혁신업계가 구체제를 대변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역대 정부는 지금껏 창조경제다 혁신성장이다 다양한 이름을 붙여 가며 혁신 산업을 부르짖어 왔지만 핵심인 갈등 중재에는 진척이 없었다. 택시업계와 우버의 갈등이 불거진 지 4년이 지났지만 변한 건 없다. 그 사이 국내 혁신 기업은 규제에 못 이겨 무너졌고 혁신 분야에서 중국, 동남아 국가에 뒤처졌다. 기존 산업은 기존 산업대로 내리막길을 걸으며 방황하고 있다.

혁신에 이중성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혁신은 모두에게 더 큰 혜택을 가져다주지만 기존 산업 종사자를 위협한다. 혁신에 뒤처지면 냉혹한 국제 경쟁에서 뒤처지지만 혁신을 무작정 밀어붙이면 기존 산업 종사자는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혁신을 추진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려면 구체제가 연착륙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이를 중재할 수 있는 건 결국 정부뿐이다. 정부가 이번에 다시 공유경제 활성화를 공언했다. 그러나 논란 자체를 피하려는 기존 태도론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히겠다’는 정부의 말이 이번엔 허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는 전국 택시 산업 종사자들이 이달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