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지분율 요건 낮춰 '벤처인수 자금줄' 숨통…稅인센티브도 만지작

by김상윤 기자
2018.07.20 07:06:44

[혁신성장 나선 공정위]②
2001년 도입한 벤처지주회사制
요건 까다롭고 문턱 높아 유명무실
지주요비율 요건 자산 15%로 낮춰
대기업 편입유예기간 7→10년 확대
재계 요구 CVC도입은 국회로 미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데일리DB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김형욱 조진영 기자] 공정거래법 제1조는 ‘대기업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지난해까지 매월 대기업 계열사수 변동 현황을 발표하는 등 대기업이 과도한 확장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를 해 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이후 기조가 확 달라졌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의 인수·합병(M&A)이 곧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의 계열사 확장은 용인하되, 과도한 경제력 집중력을 남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사실상 총수일가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에 국한해 대기업 규제를 하고 있는 셈이다.

19일 이데일리가 입수한 공정위의 ‘투자활성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벤처지주회사 개편방안’에는 공정위의 기조 변화가 더욱 뚜렷이 담겨 있다. 벤처지주회사의 요건을 대폭 완화해 대기업의 벤처회사 M&A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벤처지주회사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중소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도입됐다. 일반지주회사와 달리 자산규정이나 자회사 지분보유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도록 설계돼 있다. 이를테면 일반지주회사의 경우 자산의 50%이상을 자회사로 보유해야하지만, 벤처지주회사는 25%만 보유하면 된다. 지분율 요건도 일반지주회사는 상장사 20%(비상장사 40%)로 문턱이 높지만, 벤처지주회사는 상장·비상장사 구분없이 20%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 벤처지주회사 제도 활용도는 단 1건에 불과하다. 카카오가 지배구조 개편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벤처지주회사 형태를 취하긴 했다. 하지만 별다른 인센티브도 없고, 대기업 규제만 강화되는 터라 벤처지주회사 지위를 다시 포기했다. 사실상 벤처지주회사 제도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이에 공정위는 벤처지주회사의 설립기준(자산, 대기업편입유예)과 행위제한규정(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적은 자본으로 운영되는 벤처회사의 특성을 감안해 벤처지주회사의 자산총액 요건을 50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대폭 낮추기로 했다.

지주비율 요건도 완화된다. 지주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의 15%만 넘어도 벤처지주회사 설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테면 자산 300억원의 벤처지주회사는 자회사 주식가액 합계액이 45억원만 넘으면 된다. 다만 2년 유예기간이 지나면 자회사 주식가액이 자산총액의 25%이상이 넘어야 한다.

대기업집단 편입유예기간도 7년에서 10년으로 늘렸다.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의 경우 자회사를 보유할 경우 △계열회사간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소속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 제한 △각종 공시의무 △총수일가 사익편취 및 부당지원행위 금지 등 각종 규제를 받게 된다. 초기 벤처기업이 대기업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피라미드식 확장’을 막기 위한 자회사 지분율 요건도 일부 완화된다. 벤처지주회사가 일반지주의 손자회사로 설립될 경우 벤처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50%이상만 보유하면 된다. 일반지주회사의 경우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를 보유해야하는 빡빡한 규제에 비해 ‘자금줄 숨통’이 트인 셈이다.



이외 공정위는 법인세 ‘인센티브’ 카드도 검토하고 있다. 벤처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게 보유할수록 배당금을 익금에 덜 산입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존 벤처지주회사 제도가 인센티브도 적고, 문턱이 높아 잘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 규제를 완화하고자 한다”면서 “대기업에 묶인 자금을 스타트기업으로 훌러들어가게 하자는 게 핵심이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우려 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총수일가는 벤처지주회사 산하 자·손자회사의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했다. 아울러 지주회사 사업 보고시 편입유예된 중소·벤처 기업을 포함해 내부거래현황, 출자관계 등 현황은 제출하도록 규정할 방침이다. 총수일가가 벤처지주회사에 지분을 투자하면서 기존처럼 ‘일감몰아주기’를 하지 못하도록 한 셈이다.

다만 공정위는 대기업과 벤처투자업계에서 요구하고 있는 지주회사 체제 내 CVC(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설립은 포함하지 않았다. 지주회사의 경우 금융회사를 둘 수 없도록 한 경직된 ‘금산분리’ 규정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재계에서 CVC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금산분리 규제가 엄격한 상황에서는 도입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벤처투자가 활성화 되려면 CVC도입 등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M&A를 주 목적으로 설립된 CVC는 그룹사 지분을 활용하기보다는 펀딩을 통해 M&A자금줄을 마련한다. 다만 금융·보험회사처럼 고객돈을 활용해 총수일가 사익편취 우려가 없기 때문에 경직된 금산분리 규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게 재계의 주장이다. 4대그룹 지주사 한 관계자는 “현재도 지주회사밖에서 CVC를 운영할 수 있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면서 “자본금 마련부터 각종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데 경직된 금산분리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고 꼬집었다.

대기업 지주회사의 벤처회사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산요건, 자·손자회사 등 지분율 요건을 완화한 제도다. 2001년에 도입됐지만 실제 활용된 사례가 없어 유명무실했다.

창업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모기업의 인프라 제공을 통해 창업기업의 성장 기반마련을 지원하는 회사. 본사의 사업영역 확장과 관련있는 기술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을 말한다. M&A(인수합병)를 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투자 이익을 추구하는 PVC(Private Venture Capital)와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