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예리&무용수 박수정 "춤·연기 다르지 않아"

by장병호 기자
2016.11.29 06:04:00

무용수로 춤추는 영화배우 한예리
안무한 작품 선뵈는 무용가 박수정
국악고·한예종 같이 다닌 10년지기 단짝
12월 8~9일 서울시무용단 ''토핑''서 한 무대
30대 여자 마음 담은 ''지나가는 여인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춤 있는 그대로 느끼길"

서울시무용단 무용수 박수정(오른쪽)과 배우 한예리가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더 토핑’의 ‘지나가는 여인에게’로 한 무대에 선다. 오랜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무용은 어렵다’는 생각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 작품을 보러 와 많은 것을 생각하고 가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배우활동을 하면서도 무용수로 공연해 왔지만 이번엔 부담이 크다. 도움이 돼야 할 텐데 걱정이다. 공연 때 넘어질지도 모르겠다”(배우 한예리). “예리가 그렇게 생각해도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넘어지더라도 잘할 거란 믿음이 있다”(무용수 박수정).

춤과 연기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젊은 무용수와 배우가 한 무대에 선다. 서울시무용단 무용수 박수정(31)과 배우 한예리(31)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더 토핑’(12월 8~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지나가는 여인에게’로 호흡을 맞춘다. ‘배우와 한국무용의 콜래보레이션’이란 주제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신선한 조합이다. 그러나 정작 박수정과 한예리는 “우리에겐 새로운 작업이 아니다”라며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국악고등학교와 한국종합예술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친구 사이. 학생시절 늘 함께 춤을 췄던 두 사람은 오랜만에 같이 무대에 선다는 설렘으로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예고 없이 이뤄진 만남

올해 영화·드라마·예능으로 바쁘게 보낸 한예리는 “하루 연습량을 정해놓고 무용을 하던 게 습관이 돼 그렇다”고 말했다(사진=방인권 기자).
둘의 재회는 예고 없이 이뤄졌다. 10월 말 박수정이 한예리에게 던진 한 마디 “같이 무용할래?”가 전부였다. 한예리는 “안 그래도 올해 무용공연을 하나 하고 싶었다”고 뒤늦게 털어놨다. “수정이가 개인적으로 하는 공연인 줄 알고 마음 편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서울시무용단 공연이더라.”

박수정이 한예리를 파트너로 고른 데는 이유가 있다. ‘더 토핑’의 테마가 바로 콜래보레이션. 소재와 장르를 불문하고 한국무용이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협업을 선보이려 한 작품이다. 그런데 시간이 촉박했다. 그때 박수정이 생각한 것이 바로 ‘아티스트와 아티스트의 만남’.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박수정과 한예리는 그야말로 최고의 조합이다.

작품에는 박수정과 한예리 외에도 서울시무용단원 3명이 함께 출연한다. 박수정은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작품을 지휘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여성성’이 주제다. 30대에 접어든 두 사람의 고민을 담는다.

“30대의 여자가 되니 내가 누군가의 딸이 될 수도 있고 엄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누나·언니·동생·친구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아가 모든 사람은 엄마의 배를 통해 태어났다는 생각도. ‘내가 바라보는 여자’와 ‘당신이 바라보는 여자’라는 시선에서 공통점을 찾고자 했다. 관객이 많은 것을 생각할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박수정).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



콜래보레이션은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다. 다른 것이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안무가로서 박수정이 고민한 것 또한 춤과 연기의 만남으로 어떤 새로운 시너지를 끌어낼가였다. “예리는 연기를 하고 나는 춤을 추면 의미가 없지 않나. 오히려 예리가 춤을 잘 출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면 새로울 거라 생각했다. 오롯이 무용수가 된 예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예리(왼쪽)와 박수정은 오랜 친구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싫어하는 게 같다는 것만 빼면 극과 극이라는 두 사람은 “어릴 때 만났기에 지금처럼 친구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사진=방인권 기자).


한예리는 연기의 고민이 춤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한예리는 “예전엔 안무가로부터 지시를 받아도 이렇게 고민하지 않았다. ‘동작’이라고 생각하고 표현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박수정의 지시를 받으면 연기하듯 “왜 움직이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떤 느낌으로 움직일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런 한예리를 지켜보는 박수정의 마음도 새롭다. 박수정은 “예리는 원래 진중한 성격이라 무엇이든 굉장히 집중해서 표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디렉션을 주면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새로운 것을 표현하더라”고 한예리를 치켜세웠다.

“수정이의 첫 안무작품을 함께 했었다. 그땐 둘 다 막연했다. 그런데 지금의 수정이는 작품을 만들어가는 자신만의 룰이 생겼더라. 그만큼 성숙하고 발전했다. 무용수 박수정도 보고 싶지만 안무가 박수정이 더 보고 싶다”(한예리). “평소 예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전에 만났을 때보다 성장한 것 같지 않니?’라고. 같이 커나간다는 게 굉장히 즐겁다”(박수정).

△춤과 연기에 대한 같은 생각

박수정은 “무용의 본연이 중요하다. 마음으로 공감할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사진=방인권 기자).
안무가 국수호의 작품에서 주역으로 나서 주목받았던 박수정은 이제 서울시무용단의 ‘간판’ 타이틀을 달았다. 독립영화를 발판으로 충무로까지 영역을 넓힌 한예리는 올 한 해 영화는 물론 드라마와 예능까지 종횡무진했다. 다른 장에서 누구보다 바쁜 활약을 하는 두 사람이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춤과 연기는 방식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다. 박수정은 “사람들은 내가 무용을 한다지만 나는 온몸으로 ‘춤 연기’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예리도 “연출자와 안무가의 디렉션이 내게 다르지 않다. 표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걸 내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비슷하다”고 동의한다.

이번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두 사람이 다시 함께 무대에 선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아직 연습에 한창인 둘은 “일단은 이번 작품을 끝낸 뒤 생각해보겠다”며 웃었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나누는 게 쉽지 않다고는 생각한다. 춤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냥 보고 느끼면 된다. 마음과 마음, 몸과 몸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얻어가면 좋겠다”(한예리). “춤은 어디에나 있다. 호흡도 춤이 될 수 있으니까. 예술에 정답은 없지 않나. 관객과 공감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마음을 움직이는 춤을 추고 싶다”(박수정).

서울시무용단의 ‘더 토핑’에서 ‘지나가는 여인에게’로 호흡을 맞추는 배우 한예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서울시무용단 무용수 박수정(오른쪽)이 연습에 한창이다(사진=포토그래퍼 양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