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으로 그린 제주의 삶…"인생이 꽃이네"
by김용운 기자
2016.05.16 06:16:15
제주 정착 26년째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전
한지부조·목각·도자기 등 30여점
가로 2m 크기 ''골프장 풍경'' 회화 등
"세상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꽃"
사간동 현대화랑서 17일부터 6월12일까지
|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2014). 이 화백은 1990년 이후 제주에 정착해 자연과 골프를 소재로 한 연작을 발표하며 “집착을 버리고 무심의 경지에 이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사진=현대화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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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처음에는 암에 걸렸다는 둥 2년밖에 못 산다는 둥 온갖 루머가 떠돌아다녔다. 나보고 미쳤느냐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1990년 추계예술대에서 20여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던 한국화가 이왈종(71)은 안식년을 맞아 홀연히 짐을 싸 제주도로 향했다. 경기 안성시에서 태어난 이 화백이 고향이 아닌 제주로 내려간 이유는 하나였다. 5년을 기한으로 오직 작품활동에 몰두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5년을 기약했던 제주생활은 이 화백의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아예 제주에 정착해 ‘제주생활의 중도’라는 주제로 26년간 한결같은 작업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후 이 화백은 2013년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 생존 화가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개관했고 미술관은 제주의 명소가 됐다. 이 화백은 어느새 제주도를 대표하는 화가로 입지를 굳혔다.
△26년간 이어온 ‘제주생활의 중도’
이 화백이 4년 만에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17일부터 6월 12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전시 제목은 변함없이 ‘제주생활의 중도(中道)’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는 물론 한지부조·목조각·도자기 등 작품 30여점이 나와 관람객의 눈길을 기다린다.
지난 12일 전시에 앞서 만난 이 화백은 “제주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 매화다. 엄동설한에 망울을 터뜨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사군자 중에 매화를 으뜸으로 쳤다”며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은 매화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내 작품은 추상이 아닌 구상이어서 누구나 보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꽃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이번에는 매화를 많이 그렸지만 작품 곳곳에선 동백꽃이나 수선화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전 작품에 비해 색채가 밝아지고 원색이 다소 줄었지만 한지 위에 언뜻 민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려내는 화풍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화가 우거진 집에서 식구가 모여 함께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누는 등 일상의 소소함과 행복이 묻어나는 풍경을 특유의 해학적이고 간결한 화법으로 담았다. 이 화백이 “인생살이와 닮았다”는 골프에 대한 애정 역시 변치 않아 작품의 절반가량은 골프장 풍경과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골프장 배경 150호 대작 다수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평균 3개월씩 작업해 그렸다는 가로 2m가 넘는 150호 대작들에선 이 화백의 노익장을 가늠할 수 있다. 회화 외에도 알록달록한 색채와 천진난만한 분위기의 도자·목각 등은 이채롭지만 친근하다. 이 화백은 “17년 전 건강했던 친구가 급성 뇌출혈로 급사했다”며 “당시 친구의 넋을 기리기 위해 향로를 구했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집에 가마를 차려놓고 직접 도자기를 굽기 시작해 이후 그림이 지겨울 때마다 종종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화백은 “골프장을 그림의 소재로 넣다 보니 골프장 사장과 골프를 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근처 골프장에 나가 운동을 하는데 주로 지는 편이다”라고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이 화백의 작품에선 작은 새와 꽃 등이 사람보다 크게 등장한다. 한라산 자락에서 뛰어다닌다는 노루는 사람이 사는 집과 크기가 비슷하다. 이 화백은 “만물은 똑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모두 동등하고 평등하다”며 “그래서 사람을 일부러 크게 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도’는 치우치지 않는 평상심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이 화백은 일상을 화려하게 치장해 재조명함으로써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리는 하루하루 생활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며 “특히 이 화백의 유일한 취미인 골프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골프를 통해 희로애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 생활의 축소판처럼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고 평했다.
“이제 1년밖에 못 산다는 생각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는 이 화백이 평생 몰입한 ‘중도’(中道)에 대한 철학이 궁금했다. 이 화백은 “중도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돼 집착을 버리고 무심의 경지에 이른 상태”라며 “거기선 주체나 객체가 따로 없고 크고 작은 분별도 없는 절대자유의 세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선과 악, 사랑과 증오, 분노와 절망 등 온갖 갈등에서 벗어나 평상심을 되찾고 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중도가 아니겠느냐”며 “평상심을 유지할 때만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2013)(사진=현대화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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