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승훈 가스공사 사장 "해외자원 헐값에 팔았더니 인수자가 돈 벌어"

by최훈길 기자
2016.04.12 07:00:00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 인터뷰
"유가 오르면 ''왜 자원개발 안 했냐'' 비판 나올 것"
"수입에만 의존하면 해외서 바가지 씌워도 당할뿐"
"성과연봉제 4월도입 총력..정부, ''고령화 플랜'' 갖춰야"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저유가로 당장 입은 손실만 보고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엑스표를 하는 분위기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사진=이데일리 김정욱 기자)
[대담=오성철 정경부장 · 정리=최훈길 기자] 지난해 7월 취임한 이승훈(사진·71)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요즘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당장 코 앞에 던져진 난제들 때문이다. 하나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성과연봉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말 ‘에너지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 방안’ 연구결과를 마무리하고 사업정리 수순에 돌입한다. 기획재정부는 상반기까지를 성과연봉제 도입확대 ‘데드라인’으로 잡았다.

영업손실이 심각한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공사는 최근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축소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성과연봉제 대상 공기업(30곳)에서는 노사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공기업에서는 두 사안 모두 ‘뜨거운 감자’라며 입을 닫고 있다. 정부 눈치를 봐야 하고 여론 뭇매가 우려돼 인터뷰를 고사하는 공기업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 사장은 오히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 “해외자원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성과연봉제도 이왕이면 빨리 도입하는 게 낫다”며 거침없이 말한다.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를 역임하는 등 경제학자로 살아왔던 기풍(氣風) 때문일까. 다른 공기업과 다른 해법을 모색 중인 이 사장을 만나 이유를 직접 물어봤다.

“국제유가가 확 떨어지는 바람에 에너지 공기업들이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가스공사는 해외사업 비중이 낮아 좀 낫지만, 석유공사·광물자원공사는 입은 손해는 워낙 크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망했다’는 인식까지 퍼지고 있다. 하지만 유가는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저유가로 당장 입은 손실만 보고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엑스(X)표를 하는 분위기는 바뀌어야 한다.”

저유가, 해외자원개발 실적 하락 등으로 지난해 석유공사는 4조5003억원, 광물공사는 2조63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입었다. 가스공사도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3191억원을 기록, 재작년(4472억원)보다 줄었다. 이라크 아카스 가스전은 IS(이슬람 국가)의 점령지역이라 사업이 중단됐다.

이 결과 가스공사는 ‘자린고비 긴축경영’을 슬로건으로 경영진 성과급 반납, 해외 비핵심자산 매각 및 지사·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11년 11건에 달했던 신규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지난해 한 건도 없었다.

이 사장은 유가가 오름세인 현 상황에서 더 이상 해외자원개발 투자를 축소·중단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지난 2월 배럴당 20달러대를 기록한 이후 현재 30달러대를 진입했다. 이 사장은 “고유가로 올라가면 ‘왜 저유가 때 해외자원개발을 안 했냐’는 비판부터 나올 것”이라며 “최소한 가스공사가 추진 중인 해외자원개발만이라도 그대로 유지해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헐값 매각’도 이 사장이 우려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 사장은 “다른 공기업의 매각 현황을 보면, 여론에 떠밀려 헐값에 팔았더니 이를 산 곳이 돈 벌고 있는 곳도 있다”며 “당장 손해봤다고 해서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대폭 매각하는 방식으로 여론이 가서는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해외자산을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수익이 낮더라도 안정성 100%인 곳에 투입돼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현실적으로 매각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사장은 “다른 사업자와 함께 (컨소시엄 방식으로) 참여한 호주·모잠비크 가스전의 경우 일방적인 매각을 할 경우 ‘페널티’가 부과된다”며 “정부가 에너지공기업 기능조정을 하더라도 ‘해외자산을 모두 매각하고 철수하라’고 결론짓기보다는 현 상태를 어느 정도 유지해 나가는 게 국가적으로도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가스공사는 26개 해외투자사업 중에서 수익성, 전략적 가치 등을 기준으로 투자계획을 조정 중이다. 국내 천연가스 가격을 점차적으로 낮추고 수급 안정을 기여할 수 있는 전략적 지역을 선별, LNG 탐사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게 이 사장의 복안이다.

이 사장은 “그동안 세계 가스시장의 공급자들이 ‘갑질’을 해서 가격을 올리게 되면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는 세계가스 시장에서 ‘봉’이 될 수밖에 없었다”며 “바가지를 씌우더라도 영락없이 당하게 되는 현 구매 구조를 바꾸려면 꾸준한 해외자원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가스공사 해외자원개발 현황.(출처=가스공사)
성과연봉제 얘기를 꺼내자 이 사장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재부에 따르면 공기업 30곳은 올해 상반기까지 2급 이상 간부(7%)에게만 적용하던 성과연봉제를 4급 직원(70%)까지 확대해야 한다. 이달까지 이를 도입한 공기업에는 기본 월급의 50% 추가 성과급, 경영평가 가점 1점을 주되 늦어질수록 인센티브는 줄고 페널티가 부과된다.

가스공사는 이달 도입을 목표로 태스크포스팀(TFT)를 구성해 검토안을 만들고 노조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 상황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게 이 사장의 판단이다. 지난해는 정년연장이 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주고 받기’ 협상이 가능했다. 당시 이 사장은 “사업은 안 늘어나고 가스요금을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도저히 현 임금체계로 갈 순 없다”며 노조를 설득했다. 하지만 올해 성과연봉제의 경우 퇴직예정자가 아니라 일반 직원들까지도 확대 적용되는데 ‘협상 카드’는 마땅치 않다.

“성과연봉제, 정년연장, 임금피크제를 같이 설계해 적용했다면 상당히 부드럽게 일이 풀렸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고 51세부터 기본급 인상률을 완만하게 하면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면 상황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협상) 카드를 못 내놓는 구조에서 성과연봉제를 확대하려고 하니 쉽지 않다. 현 상황에서 성과연봉제를 확대해 도입하려면 ‘평가체계를 얼마나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이에 따라 이 사장은 평가체계 설계 과정에 직원·노조를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성과연봉제 도입 시 유·불리 등 관련 정보를 직원·노조에 정확히 전달하라”고 특별지시했다. 때로는 이 사장이 나서서 직원들과 편히 만나 “머리 속에 정년연장을 염두에 두고 성과연봉제를 일단 수용해달라”고 ‘읍소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과거 교수 시절에는 제자 나이뻘 되는 학생들에게 야단도 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렇게 못한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그렇게 야단을 치지 못하니까 힘들기도 하다. 다만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점은 있다.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정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년연장을 하는 게 맞지 않다면 정부에서 설명을 해줘야 한다. 그게 맞다면 정부가 고령화 시대에 맞는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정부가 정책을 잘 만들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