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본 대선공약)③민생경제
by좌동욱 기자
2007.11.01 10:40:01
선심성 공약 '봇물'..반시장적·현실성 낮아
복잡한 경제 현안에 대한 고민 없어..시민단체보다 못한 수준
[이데일리 김수연 좌동욱기자] .
17대 주요 대선 후보들이 '서민 경제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내건 유류세 인하 공약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인하폭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7월15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700만명 신용불량자 이자를 탕감해주겠다고 약속하자 이틀 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무등록 불법 사채에 대해 법을 고쳐서라도 이자를 동결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런 정책들은 대표적인 '반시장 정책'으로 현실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7대 대선 후보들이 양극화 해소와 중산층 복원을 시대적 과제로 내세우면서 민생 경제와 관련한 공약을 '봇물 터지듯' 내놓고 있다.() 부동산 정책이나 조세 정책, 복지, 교육 정책 역시 이런 시대적 과제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 (이들 분야는 다음 기사에서 다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부분이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라고 잘라 말한다. 특히 민감하고 복잡한 현안에 대해 충분한 검토없이 일단 지르고 보는 탓에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차라리 '무(無)공약이 낫다'는 한숨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신용불량자 대책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명박 후보는 지난 7월 발표한 '신용회복 4대 특별대책'을 통해 신용등급이 낮아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운 720만명의 채무를 국가가 관리하는 방식으로 원금을 상환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720만명은 전체 금융서비스 이용자 3400만명의 20%에 이르는 규모.
이 후보는 "(연체) 이자는 사정에 따라 감면한다"고 장담했다. 또 "기존 신용불량자에 대한 연체기록을 없애, 새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정찬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표를 얻으려는 선심성 공약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실제 정부가 지난 2005년부터 자산관리공사를 내세워 운영해 온 '한마음금융'의 연체 실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자산관리공사가 올해 초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3개월 이상 연체자' 수는 2006년 1월 4만7214명에서 같은해 12월 7만3453명으로 64%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연체금액은 887억원에서 1912억원으로 두배 가량 증가했다. ()
한마음금융공사는 원금을 8년간 나눠 상환하고 이자를 전액 면제해 주고 있어 이 후보의 모델과 흡사하다. 다만 이용자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생계형 신불자에 한정하고 있어 2006년 기준 17만6000여명에 불과하다.
안택수 의원측은 "자산관리공사의 관리부실과 돈을 빌리는 사람의 모럴해저드 문제가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연체기록 말소 방안은 이 후보가 강조하고 있는 '시장 논리'에 정면으로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나성린 한양대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일종의 특별사면 비슷한 건데, 나중에 금융기관들이 대출할 경우 검토할 수 있는 정보가 사라지게 돼 금융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정미화 변호사(경실련 상임부집행위원장)도 "보증이나 담보없이 신용으로만 돈을 빌릴 수 있는 대출 선진화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라며 "정규 대출시장에서 심사가 강화돼 신용이 없는 사람들이 비싼 이자를 무는 2, 3차 대출시장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동영 후보의 신용불량자 대책도 '쓴소리'를 들었다.
정 후보는 '중산층 복원을 위한 서민투자 119 프로그램'이라는 정책을 통해 "무등록 불법 사채에 대해 이자제한법, 대부업법을 고쳐서라도 사채이자를 동결하고 이미 상환한 이자는 원금과 상계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나성린 교수는 "현 정부에서도 많이 논의됐지만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며 "무등록 사채업자를 잡아낼 방법도 없지만 규제를 강화하게 되면 돈을 빌릴 수가 없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불법 사채업자에게라도 이자를 더 내고 돈을 빌릴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미화 변호사는 "신용불량자 대책은 대선 후보들이 포퓰리즘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심각하게 논의하고 토론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쉽게 생각할 것이면 차라리 대선 공약으로 내놓지 않는 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꼬집었다.
'유류세 인하 공약'의 경우 인하 당위성은 인정되지만 복잡하고 민감한 경제 현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고민없이 다뤄지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완기 경실련 정책실장은 "박근혜 후보가 유류세를 10% 인하하겠다고 공약한 이후 대선 후보들이 표를 의식한 유류세 인하 경쟁을 하고 있다"며 "유류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부분은 전혀 검토가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류세 인하가 정유사 마진으로 흡수될 가능성 ▲유류세 인하로 인한 유류 가격 인하 효과가 크지 않은 점 ▲환경 개선과 대중교통 지원으로 써야 할 유류세가 대부분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로 쓰이고 있는 점 등을 대선 후보들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실장은 "경실련 내 전문가들이 유류세 인하와 관련해 내부 검토를 진행했으나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아직 공식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 정책에 대해 상대적으로 책임이 적은 시민단체조차 신중하게 접근하는 데 후보들의 의사결정 과정은 '속전속결'이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23일 방송 인터뷰를 통해 "(유류세와 같은) 목적세는 100% 다 줄여야 한다"며 "유류세를 첫해 30%를 인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가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자 이를 철회하는 해프닝을 보이기도 했다.
문 후보 정책과 공약을 총괄하는 신봉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후보의 발언 이후 진위를 살려 공약을 가다듬었다"고 해명했다. 환경오염 방지라는 세금 목적과 관계 없이 도로 건설 등에 쓰이는 세금(전체의 85%)을 모두 환경세로 돌리는 대신 유가가 급등할 경우에 한해 유류세를 30% 인하하겠다는 것.
박완기 실장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높았던 후보조차 유류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이명박 후보는 지난 7월 박근혜 후보가 유류세 10% 인하와 함께 택시 LPG 특소세 면제를 공약하자, 한발 더 나가 장애인 차량의 LPG 부가세·특소세·교육세까지 면제하자고 공약했다.
하지만 장애인 차량의 LPG 세금 면제 방안은 장애인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지난해 이미 수당을 올리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진 사안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차를 가질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장애인은 44만명으로 총 장애인 가구의 20%에 불과하다. 특히 장애인 본인보다는 장애인 가족들이 실제 차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 모럴해저드 논란까지 제기됐었다.
대표적인 감세주의자인 나성린 교수조차 "대선 후보들의 유류세 공약은 인하 효과나 경제적 부작용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남발되고 있다"며 "사람들이 유가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니깐 표를 의식해서 내놓은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