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유흥가 `매물` 1000여곳

by조선일보 기자
2003.10.26 21:10:43

법인카드 접대 사라져 ,테이블 매상도 "뚝"

[조선일보 제공] 24일 고급 룸살롱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밤거리. 유흥가에서 ‘대목’으로 꼽는 금요일 밤이었지만 인적이 뚝 끊어진 골목에선 호객꾼과 주차 요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난롯불을 쬐고 있었다. 새벽 1시, 고급 외제 승용차에서 내린 40대 일행 3명이 A업소로 들어갔다. 19개의 룸을 갖췄다는 이 업소의 김모 사장은 “오늘 다섯 번째 손님”이라고 말했다. “강남 룸살롱이 경기의 진짜 바로미터예요. 15년 동안 ‘물 장사’를 했지만 요즘 같은 불황은 처음입니다. 어렵다던 IMF외환위기 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찬바람이 불면 손님이 는다’는 이 바닥 공식도 헛소리예요.” ‘불황 무풍지대’로 알려진 서울 강남 유흥가까지 한파가 몰려오고 있다. 강남의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주점·호프집 등을 포함해 강남·일대 8000여개의 유흥업소 중 1000여곳이 매물로 나왔다. 매물은 쏟아졌지만 바짝 얼어붙은 경기 탓에 실제 매매가 이뤄지는 경우는 3~4%에 불과하다. 강남구청 보건위생과 윤두현 주임은 “예전에는 업주들이 단속에 적발돼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1000만~2000만원의 과징금을 선뜻 내고 영업을 계속했는데, 최근에는 ‘장사도 안 되는데 아예 문을 닫겠다’는 식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자정 무렵 선릉역 근처의 B비즈니스클럽. 방 8개 중 6개가 비어 있었다. 손님을 받은 2개 테이블은 양주 한 병과 과일안주 한 접시씩을 주문했을 뿐이다. 이성주 전무는 “손님이 적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테이블 매상도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져 한마디로 죽을 맛”이라며 “당장 때려 치우려고 가게를 내놔도 사려고 문의해오는 데도 없다”고 했다. 술값이 일반 업소보다 엄청나게 비싸 소수 상류층 고객만 찾는 일명 ‘텐프로(10%)’라고 불리는 프리미엄급 룸살롱에도 손님이 떨어지긴 마찬가지. 서초동 교보생명 사거리 근처 C업소의 김모씨는 “한때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얘기”라며 “단골 ‘큰손’이나 자영업자들이 찾아줘 당장 문을 닫을 처지는 아니나 뜨내기 손님들이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박모씨는 “요즘 흥청망청 술 마시는 직원은 감원 대상 1순위”라며 “예전 관행대로 법인카드로 술값을 결제하는 ‘간 큰’ 회사원은 없다”고 말했다. 취객들의 ‘2차’가 줄어들자 숙박업소들도 서리를 맞았다. 50여개 객실을 갖춘 삼성동 E모텔은 작년 대비 20~30% 정도 손님이 줄었다. 5.1채널의 홈시어터, 평면 디지털 TV, 스팀 사우나 등 호화 시설을 갖춘 객실로 유혹하지만 경기불황을 타는 손님을 끄는 데 역부족이다. 자정이 넘은 강남 일대 유흥가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모범택시들이 몇 시간씩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운전기사 임만영씨는 “요즘 밤거리엔 통행금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 7~8시쯤 업소로 출근하는 유흥업소 종사자들, 밤 11시쯤 일식집에서 나오는 접대손님들이 부쩍 줄었습니다. 룸살롱 등 업소의 ‘콜’도 거의 없습니다. 오후 4시에 나와 밤을 꼬박 새우고 돌아도 하루 7~8만원 벌이가 쉽지 않아요.” 우후죽순 늘어난 대리운전 업계는 손님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여름만 해도 3만원부터 가격 흥정을 하던 업체들은 ‘서울 전지역 2만원’을 내세우며 가격 파괴로 치닫고 있고, 이 추세라면 더 떨어질 것 같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불황으로 소득이 줄고 소비가 위축된 것은 안타깝지만 무절제한 카드 사용을 자제하고 기형적으로 성장한 향락 문화의 거품을 빼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