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연호 기자
2023.11.09 06:30:00
11월 9일 '소방의 날'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1년 연재 시작
동료들 화재 지원에 후배와 둘만 남았던 이 소방관, 가스 중독 사고 3명 모두 구조
올 4월 휴무일엔 광양 서천서 자살 시도 50대 여성 구하기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동료들 믿고 매일 화마에 뛰어든다"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지난해 6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전남 보성소방서 벌교119안전센터 소속 이학민(32) 소방관은 평소보다 더욱 긴장한 채 펌프차(소방차)에 앉아 후배 소방관 한 명과 대기 중이었다. 인근 고흥군에서 대규모 축사 화재가 발생해 동료들이 모두 그곳으로 지원을 나갔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턴 관내 모든 119 신고가 이 소방관과 후배 한 명, 총 2명의 몫이었다. 그런데 다른 동료들이 축사로 지원 나간 10분 후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지하실 사람이 쓰러짐’이란 지령서를 보는 이 소방관은 간단한 출동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 소방관은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고흥군 동강면의 가스 중독 사고였다. 고흥군 관내 소방차들이 모두 축사 화재 진압에 투입된 상황이라, 그나마 동강면에서 가장 가까운 벌교 센터로 출동 요청이 온 것이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현장에 가까워질 즈음 사람들이 다급하게 그들을 향해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소방관은 순간 후배와 눈이 마주쳤다. 후배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이 소방관은 더욱 냉정해져야만 했다. 이 소방관은 후배와 함께 장비를 착용한 채 지하실로 급히 뛰어내려갔다.
랜턴으로 사고 현장을 비추니 세 명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에게 재빨리 산소 공급부터 시작했다. 추가 인원이 필요하다는 무전과 동시에 지하실 내 공기 정화도 시작했다. 그러나 건너편 무전기에선 ‘추가 차량이 구조 현장까지 약 40km 떨어져 있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그렇지만 안타까움에 마음을 쓸 새도 없었다. 후배와 함께 세 명에게 골고루 돌아가며 산소를 공급했다. 다행히 그중 한 명의 의식이 돌아와 그를 지상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 소방관이 메고 들어간 산소통 용량이 소진돼 구조 대상자들을 지하에 두고 다시 지상으로 향했다. 그의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지만 모두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서둘러 용기를 교체하고 다시 지하실로 향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만큼 그 소리가 반가웠던 적은 없었다. 지원 차량 및 인원들이 도착하고서 남은 두 명도 모두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다.
두어 달 후 이 소방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때 질식됐던 구조자가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소식이었다. 사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소방관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남 순천에 사는 이 소방관은 지난 4월 1일 주말을 맞아 옆 동네 광양으로 가족과 바람을 쐬러 갔다. 벚꽃 축제를 맞아 오랜만에 들뜬 마음으로 서천 벚꽃길을 걸었다. 왕복 2km 정도 우레탄 산책로를 걸어가는데 50대 한 여성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산책로를 돌아오는데 아까 본 그 여성이 물 위로 등을 보이고 큰대자로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천을 가로지르는 산책로 옆 돌다리를 봤더니 여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옆을 지나던 한 할아버지에게 119 신고를 부탁하고 곧바로 그 여성을 크게 부르며 물로 들어갔다. 몸을 돌려 물 밖으로 나와 여성의 의식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의식이 있었다. 출동한 광양소방서 소방관들에게 그 여성을 인계하고 나서야, 자신의 신발과 바지가 모래와 진흙에 뒤엉켜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 친형, 외사촌 형 두 명 모두 소방관이라는 이 소방관에게 불로 뛰어들 때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냐고 물었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어… 무섭지 않다? 솔직히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는 덧붙였다. “같이 들어가는 동료들이 있어 그들을 믿고 같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혼자라면 힘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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