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리차도 큰데 日긴축까지…한은, 금리 내리기 어려워진다

by최정희 기자
2023.07.31 08:18:49

日 BOJ, 사실상 10년물 금리 최대 1%까지 허용
국내 유입된 '금리 민감' 일본계 자금 200억달러
엔 캐리트레이드 되돌려져도 절대 금리 높아 자본유출 제한
엔화 강세 전환 빨라질 수도…원화 변동성 예의주시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3.50%)과 미국(5.25~5.50%)의 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인 2%포인트로 벌어진 상황에서 일본은행(BOJ)이 뒤늦게 통화 긴축 기조로의 전환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저금리로 돈을 빌려 더 높은 금리를 주는 해외 채권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되돌려지거나, 국내로 유입됐던 일본계 자금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등 자본유출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한일간 절대 금리차가 큰 만큼 실제 자본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엔화 강세에 따른 원화 변동성은 커질 전망이다. 대내적으로 가계대출 급증, 새마을금고 사태에 따른 금융 시장 불안 등까지 맞물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기 더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BOJ는 지난 28일 금융통화정책회의를 통해 10년물 국채 금리를 ±0.5%로 묶어놨던 ‘수익률 곡선제어(YCC)’를 일부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10년물 국채 금리가 0.5%를 넘어가더라도, 최대 1%까지는 추가로 국채를 매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올해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전망치를 석 달 전 2.5%에서 이번에 3.2%로 상향 조정하면서 강한 긴축 신호를 보였다. 내년에는 YCC 폐지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일본의 긴축 기조 강화는 금융시장 전반에 긴축 경계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시장에선 내년초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최근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데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2025년 전까지는 물가가 목표치 2%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밝힌 만큼, 미국의 금리 동결 기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한미 금리 역전폭이 2%포인트 이상에서 장기화되는 데다 일본 긴축까지 맞물린 형국이다.

가장 경계되는 것은 자본유출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유입돼 있는 일본계 자금 중 금리 변동에 직접 영향을 받는 채권, 은행대출 등에 투자된 규모는 200억달러(약 25조6000억원, 2021년말 기준) 규모다. 전 세계 일본계 자금의 3~4% 수준이다. 채권만 별도로 보면 작년말 10조엔(약 9조원) 가량이 일본계 자금으로 우리나라 전체 채권시장 규모(240조원)의 3.8%에 불과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BOJ가 긴축으로 가더라도 한일간 절대 금리차가 큰 만큼 자본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한은 기준금리는 연 3.5%인 반면, 일본의 단기금리는 여전히 -0.1%다.

김상훈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전 세계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되돌려질 수 있지만, 금리 절대 레벨에서 차이가 커서 국내에서의 자본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신술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BOJ가 긴축으로 가면 일본 자금이 본국으로 회귀할 수 있지만, 수출입 등 다른 요인들도 많아서 방향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긴축 경계에 채권금리가 오르면서 채권시장이 약세를 보일 수 있지만, 엔화 강세에 따른 원화 변동성 확대 등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엔화는 기축통화라는 점에서 엔화와 원화가 반드시 동조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 한일 수출 경합 품목 차원에선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등 긍정적 측면도 있다”면서도 “통화완화 정책을 고수하던 일본이 긴축으로 가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긴축 경계가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선경 국금센터 책임연구원은 “엔화 강세로 아시아 통화 전반이 강세로 가면 원화도 강세를 보이겠지만, 엔화는 선진국 통화이기 때문에 원화 등 신흥국 통화와는 방향성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엔화 강세 강도가 커지면 달러가 약세로 전환될 수도 있으나 BOJ의 긴축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급격한 엔화 강세가 연출될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지난 28일 달러·엔 환율은 138엔까지 밀렸으나 달러인덱스는 101.7선에서 머물렀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고작 0.7원 내린 1277.0원에 그쳤고 원·엔 환율은 914원대로 상승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진 상황에서 일본의 긴축 우려가 등장하면서 금융시장 전반의 긴축 경계감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 약세(금리 상승), 원화 변동성 확대 등으로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도 뒤로 밀릴 수 있다. 가계부채가 석 달째 증가하는 등 대내적으로도 금리 인하를 늦출 이유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상훈 본부장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먼저 금리를 올린 것이 가계부채 때문인데, 지금도 가계부채로 인해 금리를 먼저 못 내리게 생겼다”면서 “한미 금리차가 2%포인트로 벌어진 상황에서 금리를 너무 빨리 많이 내리면 원화가 약세로 갈 위험도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장기 금리 동결기에 대비해 한은이 은행의 적격담보증권 확대 등 유동성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KB증권은 “한은이 오랜 기간 높은 수준의 금리가 유지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금융불안에 대비해 은행에 유동성 공급을 강화키로 했다”며 “이는 한은이 장기간 금리 동결을 유지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