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 대웅제약 상대 ITC ‘절반의 승리’

by노희준 기자
2020.12.18 05:00:00

대웅제약 보톡스 ‘나보타’ 21개월 미국 수입 금지
메디톡스 균주 영업비밀 인정 안돼 예비판정 부분인용
복잡해진 셈법에 업계 합의 가능성 커져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노희준 왕해나 기자] 메디톡스와 대웅제약(069620)이 벌여온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보톡스 전쟁’이 메디톡스의 ‘절반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메디톡스 완승’이었던 예비판결이 일부 수용되고 일부가 파기되면서 양사의 이해득실 셈법이 복잡해졌다. 이번 판결로 두 회사의 합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ITC는 16일(현지시간) 메디톡스가 자사의 보톡스 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했다며 대웅제약을 상대로 제소한 사건의 최종 판결에서 대웅제약 보톡스 나보타의 미국 수입을 21개월간 금지했다. 대웅제약의 나보타가 상품 수입 및 판매와 관련해 특허권, 상표권 등의 침해에 따른 불공정 행위를 해 미국 관세법(337조)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ITC는 최종판결에서 지난 7월 예비판결을 부분 인용하고 부분 파기했다. 통상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예비판결 결과는 최종판결에서 뒤집히지 않지만 이번에는 일부가 번복됐다. ITC는 우선 메디톡스 제조공정의 영업비밀성과 도용과 관련한 예비판결을 인용했다. 대웅제약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톡신 제조공정을 훔쳤다는 것이다.

반면 ITC는 최종판결에서 메디톡스 균주에 영업비밀성이 있다는 예비판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메디톡스 균주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대웅제약은 그간 “상업적으로 보톡스 생산에 사용 가능한 균주를 구하는 것은 과거는 물론 지금도 전혀 어렵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대웅제약 나보타의 미국 수입 금지 기간이 10년에서 21개월로 줄어든 것은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ITC 최종 판결은 60일 이내 대통령 승인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미국 대통령이 ITC의 최종판결을 거부한 사례는 지난 33년간 단 1건이다. 2013년 애플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한 ITC 판결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거부한 건이다. ITC 소송에 불리한 당사자는 또 ITC 최종 판결에 대해 60일 이내에 연방순회항소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대웅제약은 21개월 금지명령에 대해서 즉각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항소한다는 방침이다.

대웅제약의 나보다는 일단 이번 판결이 나온 현지시각 16일부터 21개월간 미국 수출이 금지됐다. 대웅제약의 미국 현지 판매 파트너사 에볼루스가 보유한 나보타 재고분도 판매할 수 없다. 만약 ITC 최종 판결 확정에 필요한 미국 대통령의 심사 기간 대웅제약이 나보타를 미국에서 판매하려면 1바이알당 441달러(48만원)의 공탁금도 내야 한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연간 매출에서의 나보타 미국 매출 비중은 현재 2% 미만”이라며 “기업경영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웅제약은 경쟁사의 영업비밀(메디톡스의 보툴리눔 톡신 제조공정)을 침해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신뢰가 생명인 제약회사로서 도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메디톡스는 일단 국내 식약처를 상대로 한 소송으로 뼈랑끝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숨통을 조금 틔울 수 있게 됐다. 메디톡스는 국내에서 무허가 원액 사용 혐의와 판매에 필요한 국가출하승인절차를 거치지 않은 혐의 등으로 메디톡신 등 주력제품이 줄줄이 취소돼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ITC 최종판결은 국내 진행 중인 소송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일단 메디톡스가 한발 앞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보인다.

정경민 도울국제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한국 재판부에서 ITC 결정문을 요청했을 것이고 메디톡스는 이를 중요 증거자료로 사용할 것”이라며 “다만 쟁점이 균주와 제조공정 두 가지였는데 ITC가 제조공정 부분 인정했지만 한국 재판부가 두 가지 쟁점 모두를 인정할지 미국 재판부와 다른 판단을 내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을 상대로 보툴리눔 톡신 관련 균주와 제조공정 기술을 도용당했다며 2016년 11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2017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영업비밀 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양사가 결국 합의에 이를 것으로 봤다. ITC 항소심은 빨라도 1년 길면 2~3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 양사 모두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써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로펌의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영업비밀침해 소송, 특히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하면 회사들은 수십억의 소송비용이 들기 때문에 대법원 상고심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큰 회사일수록 소송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물밑 합의를 시작하며 소송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거의 합의에 도달한다”고 설명했다.

대웅제약의 파트너사인 에볼루스는 합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ITC 최종판결 직후 데이비드 모아타제디 에볼루스 사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애브비와 메디톡스와의 합당한 합의 조건을 포함해 법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대웅제약의 도용 혐의가 확정된 최종판결을 대환영한다”며 “국내에서 진행하고 있는 소송이 급물살을 탈것”이라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