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W페스타]기모란 “질병청 승격 울컥했다…최선 다하는 당신이 영웅”

by김미경 기자
2020.10.12 05:00:00

[Zoom人]기모란 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
제9회 이데일리 W페스타 기조연사로 연단 올라
메르스 경험 교훈…사회적 거리두기 첫 제안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늦은 감이 있지만, 드디어 승격되는구나 싶었다. 사실 그동안 의무만 커지고 권한이 없어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임명장을 전달받을 때는 울컥했다.”

지난달 초 질병관리본부가 감염병 대응에 독자적 권한을 갖는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것에 대해 기모란(55·사진)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학과 교수는 이같이 감격해했다. 지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유행 때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 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시 질병예방센터장이었던 정은경 현 청장과 함께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뒤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게 질병관리청의 발족이었기 때문이다. 청 승격으로 빠른 대응이 필수인 감염병 관리·통제에 대한 콘트롤타워 역할을 타 기관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기 교수는 제9회 이데일리 W페스타 참여를 앞두고 10일 가진 인터뷰에서 “5년 전 메르스 당시엔 역학조사 인력이 턱없이 모자랐고, 투명한 정보공개가 안 돼 혼선은 잦았다. 정 청장은 사태 확산의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아야만 했다”며 “메르스를 반면교사로 삼아 감염병 대응 기초를 마련해왔다. 우리의 사투가 결실을 맺게 돼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기 교수는 국내 대표 감염역학·예방의학 분야 전문가다. 국내에서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민간위원회에서 중책을 맡아왔다. 현재 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을 맡아 정부 방역정책에 각종 자문을 해오고 있다. 기 교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대표 감염역학·예방의학 분야 전문가인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가 코로나19 장기화 국면에 맞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기 교수는 오는 20일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열리는 제9회 이데일리 W페스타 기조연사를 맡아 연단에 선다(사진=뉴시스).
앞으로 코로나19 상황은 어떻게 될까. 국민들은 과연 언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기 교수는 코로나19 장기전 속 오는 20일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열리는 이데일리 W페스타에 기조연설을 맡아 연단에 선다. K방역의 과제와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W페스타가 올해 주목한 키워드는 ‘일상 속 영웅’이다. 기 교수는 이 시대의 새로운 영웅상에 대해서도 제언할 예정이다.



기 교수는 “정 청장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오늘날의 영웅이 아닐까 싶다”며 정은경 청장을 새로운 영웅상으로 첫손에 꼽았다. 그는 “세상은 이제 영웅호걸에 의해 바뀌는 게 아닌 것 같다. 한 사람의 영웅시대는 갔다”면서 “어떤 직업이든 그 누군가의 수고는 타인을 돕는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때 우리 사회는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 교수는 한양대 예방의학 첫 여성 전공의다. 의대생 가운데 여성은 10%에 불과했던 1980년대 중반에 의대에 입학했다, 산부인과 전공인 여자 의대생도 드물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 교수는 “처음엔 정신과를 전공하고 싶었으나 성(性)벽에 막혔다. 당직을 서는 1명이 폐쇄 병동을 맡아야 했던 만큼 위험부담이 커 여성 전공의를 뽑지 않던 시절이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여성 편견이었다”고 웃었다. 이후 선택한 예방의학의 길도 쉽지는 않았다. 그는 “기초학 예방의학은 질병의 대응 정책을 설계·연구하는 영역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라며 “때문에 학교 내 부수적인 일이 많았고 연구할 수 있는 감염분야의 한계도 커 해외로 나갔다가 국립암센터 대학원이 생기면서 국내 합류했다”고 덧붙였다.

예방의학 전공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는 “즉각적인 결과로 나타나지 않아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 분야”라며 “개인만의 결과물도 아니어서 본인 스스로 즐겁게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큰 틀에서 나름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코로나19가 국내 기승을 부리던 지난 2월말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처음 제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 교수는 “당시 전문가들이라면 알만한 당연한 얘기였다”며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접촉 줄이기 등 우리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이라 반신반의했는데 시민들이 먼저 반응하고 공감한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코로나19 재확산의 원인으로 8·15 집회를 꼽으며 그 위험성을 설명했다. 그는 “8·15 집회의 타격이 심각했다”며 “확진자 수가 늘었을 뿐 아니라 확진자 중 노인이 많았음에도 이들이 역학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치명률이 높아지고 사망률도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를 계기로 환자수 주요 그룹이 20·30대부터 60대까지 확대됐고 확진자 수의 빠른 증가로 병원의 부담은 커졌다. 기 교수는 “10월 3일과 9일 집회를 막기 위한 서울 광화문 일대의 경찰차벽이 과잉 대응이라는 일각의 지적이 있는데 8·15 집회를 기점으로 늘어난 피해를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의견”이라고 꼬집었다.

질병관리 체계 개선과 관련해선 “결국에는 우리가 어떤 방향을 정해도 상황이 굉장히 빠르게 달라질 수 있다. 8·15집회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면서 “코로나19 장기화 국면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선 많은 준비와 대응·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들을 향해서는 “방역에 잘 대응하고 있지만 한국처럼 분노, 혐오가 많은 나라도 없는 것 같다”며 “정부대책에 무조건 비난하기보다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시야를 멀리 넓게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