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0.05.21 05:00:00
부동산 행정의 기초자료인 공시가격이 잘못 산정됐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현행 단독주택의 개별공시지가가 개별주택공시가보다 높은 경우가 전국적으로 23만채에 이른다는 것이 감사원의 발표다. 다시 말해서, 땅값이 땅값과 집값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는 얘기다. 우리 부동산 행정의 황당한 현주소다.
국토교통부가 일부 표준지에 대해 용도지역을 감안하지 않고 기준가격을 정한 것도 문제다. 표준주택에 있어서도 이같은 처리가 드러났다. 용도에 따라 건폐율·용적률이 달라지고 가격과 세액이 달라진다는 것은 부동산 정책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이런 기본을 무시하고 일을 처리했다니 어처구니없다. 더 나아가 관할 지자체의 평가부서에 따라 인접 필지의 가격 차이가 드러난 경우도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공시가는 보유세는 물론 건강보험료 산정, 기초연금수급대상자 결정 등 60개 항목이 넘는 행정 조치에 활용된다는 점에서도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주먹구구로 나타났으니, 이에 따른 후폭풍이 걱정이다. 우선 억울하게 세금을 더 냈다며 환불 요구가 빗발치게 될 것이다. 엉터리 공시가로 부동산 거래에 손해를 봤다는 이의 제기도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이번 감사는 단독주택 대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국 1383만 가구에 이르는 아파트·빌라 등 공동주택은 배제됐다고 한다. 공동주택까지 포함됐다면 행정의 난맥상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앞으로 추가감사 계획이 없다는 것이니, 부실행정을 뻔히 목격하고도 그냥 용인하고 넘어가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모르겠다. 인력·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를 제쳐놓는다면 감사원의 존립 목적에도 어긋난다.
이번 드러난 공시가 난맥상은 무리한 부동산 억제 정책의 산물이다. 증세와 투기억제만 보고 준비도 없이 마구 올리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이의신청이 3만 7000건으로, 2017년(336건)의 100배 이상 늘어났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공시가 현실화로 부동산의 쏠림현상을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증세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 소통이 원활치 않은 국토부와 지자체의 칸막이 행정도 시정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