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 진화]①태평양 "위기통합관리·신기술 대응…글로벌 최고로"

by이성기 기자
2019.04.08 06:12:00

김성진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 인터뷰
원스톱 서비스 체계 구축 '통합 위기관리 대응팀' 운영
내재된 개척자 DNA…국내 최초 판교사무소 개소
올해 인도네시아 진출 등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가속

법무법인 태평양 김성진 대표 변호사는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기업의 위기 양상이 달라지면서 의뢰인에게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사적인 대응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신태현 기자)


[대담=이데일리 이정훈 사회부장·정리=이성기 기자] “로펌이 각 전문분야별로 성장하던 시기는 이제 지났습니다. 연관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시대로 접어 들었습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을 이끌고 있는 김성진(61·사법연수원 15기) 대표변호사는 7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변화에 따라 기업 위기에 종합적이고 전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 체제를 갖춰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군 법무관을 마친 뒤 1989년 태평양에서 변호사로 첫 발을 내딛은 김 대표는 건설·부동산부문을 포함해 전 분야에 걸친 업무를 수행하다 2015년 업무집행 대표 변호사를 맡았다. 임기 3년을 마친 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과감한 변화를 원하던 후배들은 다시 한 번 그의 등을 떠밀었다. “고속 성장을 거듭하다 과감한 투자시점을 놓쳐 잠시 멈칫했는데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새로운 도약을 원하는 후배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김 대표는 법률시장 개방·송무시장 포화라는 이중고와 맞닥뜨린 시대에 태평양호(號) 키를 다시 쥐고 영미계 로펌과도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첫 임기 동안 김 대표가 강조한 건 크게 세 가지. 전문가로서 글로벌 수준의 최고 실력을 갖추는 것과 조직 개편을 통한 원스톱 시스템 서비스 체계 구축, 해외 업무의 확장이 그것이다. 특히 20개가 넘는 전문부서를 지속적으로 통합하는 조직 개편에 공을 들였다. 예전과는 기업 위기양상이 달라지면서 전사적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차원이다. 현재 크게 자문과 송무로 나눠 2인의 총괄 대표가 중요 사건을 직접 챙기고 있다.

우선 기업 법무와 금융을 합쳐 전통적인 강자로 인정받아 왔던 인수·합병(M&A)팀을 대거 확대 개편했고 규제 대응 관련 정책 자문단그룹인 GR(goverment regulation) 솔루션그룹을 구성해 복합적인 규제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지원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형사·노동·산업안전·포렌식팀 등을 총망라한 통합 위기관리대응팀도 운영 중이다. 위기관리대응팀은 김영란법, 산업 안전사고, 미투 열풍, 대관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한 가지 위기가 또 다른 위기를 몰고 오는 스노볼(snowball) 현상이 특징인 만큼 리스크가 발생하면 법률 자문부터 언론 대응, 포렌식서비스, 추가 리스크 점검 등을 총괄 지원한다.

김 대표는 “법률 인공지능(AI)이 등장하는 시대에 특정 법률 문제에 대한 답을 달라며 찾아오는 곳은 없다”며 “초기 대응 플랜과 함께 향후 전망에 따른 총제적인 해결책을 달라는 요청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기업 총수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오너 리스크 분야 전통 강자로서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김 대표는 “소송에서 강하지 않고서는 최고 로펌이 되기 어렵다”면서 “중요 사건에는 최정예 변호사들을 전부 투입할 뿐만 아니라 대법관·법원장을 지낸 우수한 분들로 송무 지원단 체제까지 가동해 주기적 검토를 거치게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산업 환경 변화에 발맞춰 선도적으로 잠재 분야를 개척하는 것도 강점 중 하나다. 전 분야에 걸쳐 최첨단 산업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기업들의 전초기지인 판교테크노벨리에 국내 로펌 최초로 지난해 5월 판교 사무소를 개소하고 최정예 팀을 투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M&A에 잔뼈가 굵은 이병기 변호사가 판교사무소장으로 진두 지휘하는 아래 지적재산 전문가 민인기 변호사와 TMT(통신·미디어·기술) 전문가인 박준용 변호사가 상주하고 있다. 본사에서도 판교 전담팀을 꾸려 △기업법무 △증권금융 △지적재산 △정보통신 △공정거래 △규제정책 등 전 분야에 걸쳐 효율적이고 종합적인 법률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인터넷은행 인가, 빗썸 등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자문, 정부의 자율주행 자동차 및 드론 관련 해외 법제도 조사 등을 활발히 수행하며 입지를 더욱 굳히고 있다. 김 대표는 “4차산업혁명이 아직은 활성화가 덜 된 상태지만 무인 주행과 전장산업 등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부분”이라며 “개설 초기에 비해 관련 수익이 두 배 정도는 늘었다”고 귀띔했다.

태평양의 프런티어 DNA는 북한팀에서도 확인된다. 로펌 중 최초로 2002년 북한팀을 구성한 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약 50명 규모의 ‘남북관계 및 남북경협 특별팀’으로 확대 개편했다. 이미 2016년 개성공단 폐쇄 사태 당시 입주기업 권리구제방안에 대해 자문한 적이 있는 태평양은 평창올림픽 땐 대표단 참가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국내 기업에 대한 남북교류협력 과련 자문도 제공했다. 김 대표는 “눈 앞의 이익 보다는 대형 로펌의 사명감으로 생각하고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며 “그간 쌓아 온 북한 관련 용역·논문 등의 결과물을 집대성해 북한법 총서 발간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진 대표 변호사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법무법인 로고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도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아시아 전역 및 중동에까지 8개 해외 사무소를 운영 중인 태평양은 각 해외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특히 남아시아팀은 베트남 현지 법무자문시장의 약 70%를 점유할 만큼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8년 롯데카드의 베트남 테크콤 파이낸스 인수 건이다. 베트남의 자국 금융사업 보호 환경에서도 한국 신용카드 회사가 베트남 금융회사를 100% 지분 인수해 중앙은행 승인까지 받아낸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 작년 베트남 M&A 포럼에서 `올해의 딜`에 선정되기도 했다.

앞서 2016년 우리은행의 베트남 진출시 베트남 법인 설립 및 인허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한국계로서는 신한 베트남 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외국인이 단독으로 100% 법인을 신규 설립한 사례다.

올해는 인도네시아 진출도 계획 중이다.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자 인구 세계 4위의 시장인 인도네시아는 해외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 관련 법제 정비 중으로 혼선의 여지가 많아 법률 서비스 수요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국내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모범 포럼으로 입지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김 대표는 “국내 로펌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직 실력만이 말을 해 줄 것”이라며 “어떤 세계적인 기업이 고객으로 와도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로펌을 목표로 정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