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진입한 한국…상속·유언·치매 관련 금융상품 뜬다
by권소현 기자
2017.09.11 06:00:00
가입 때 지정한 귀속권리자에게 신탁액·운용수익 사후 즉시 지급
증여세 절감 효과 생전 증여 상품…치매 걸렸을 때 대비 전용 신탁도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우리나라가 고령사회 진입을 공식화하면서 금융권도 고령자 맞춤 금융상품 개발에 적극 나섰다. 연금 등 노후대비 상품은 물론이고 상속과 유언 등을 위한 신탁상품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서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사례를 연구하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위한 금융상품에 그치지 않고 2세대, 3세대에 걸쳐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1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는 725만7288명으로 전체 인구인 5175만3820명의 14.02%를 차지했다. 유엔 분류상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로, 14% 이상이면 고령사회에 들어간다.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가 된지 17년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이처럼 고령사회가 되면서 금융수요도 변화하고 있다. 은퇴 대비 연금상품이나 예·적금, 펀드, 보험 상품에 대한 관심은 기본이고 최근 들어서는 상속과 증여, 사후 대비 관련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금융권도 이에 발맞춰 다양한 신탁상품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최근 ‘NH All100플랜 사랑남김신탁’을 선보였다. 고객이 생전에 귀속권리자를 지정하고 500만~5000만원을 신탁하면 고객 사후에 상속인들의 별도 동의 없이 귀속권리자에게 즉시 지급하는 상품이다. 은행별로 이와 유사한 유언대용신탁을 판매하고 있다. 금융기관이 생전에는 신탁 자산을 운용하면서 발생한 수익을 위탁자에게 돌려주고 사망 후에는 계약 내용에 따라 재산을 처분해주는 상품이다. KEB하나은행 ‘하나리빙트러스트’, KB국민은행 ‘골든라이프안심상속신탁’, 신한은행 ‘신한미래설계 내리사랑신탁’, 우리은행 ‘우리웰리치100 안심신탁’ 등이 대표적이다.
살아있는 동안 자녀에게 증여해주는 증여신탁 상품도 있다. 부모가 가입하고 자식을 수익자로 해 일시에 은행에 목돈을 맡기면 이를 국채에 투자해 매년 두 번, 수익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지급한다. 올해 2월 말부터 세제혜택이 줄면서 인기도 시들었지만, 일시에 증여했을 때에 비해 증여세를 아낄 수 있다. KB국민은행의 ‘KB골든라이프 스마트 증여신탁’을 비롯해 IBK기업은행의 ‘IBK평생설계 증여신탁’, 신한은행의 ‘내리사랑 증여신탁’, 우리은행의 ‘명문가문 증여신탁’ 등이 있다.
이밖에도 치매에 걸리면 은행이 돈을 관리해주는 치매안심신탁이나 발달장애·치매 등으로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경우 가입할 수 있는 성년후견인지원신탁, 보호자가 사망한 미성년자들이 물려받은 재산을 성년이 될 때까지 관리해주는 미성년후견지원신탁, 보급형 상품인 가족배려신탁 등 고령사회에 맞는 다양한 신탁상품이 나와 있다.
대부분 고령사회가 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해줄 금융상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언대용신탁의 경우 사망 후 재산분할에 관한 분쟁을 해결해줄 수 있고, 치매안심신탁이나 성년후견인지원신탁은 고령화로 인한 질병에 어느정도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내 금융사들이 가장 많이 참고하는 국가는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65세 이상 인구가 2015년 기준 26.7%로 이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치매로 판단력이 흐려져 사기를 당하거나 금융피해를 입는 상황을 막기 위한 ‘시큐리티형 신탁’, 이미 치매에 걸려 의사결정이 어려운 경우를 위한 ‘후견제도지원신탁’, 원활한 상속을 위한 ‘유언대용신탁’, ‘자산승계신탁’, ‘자사주승계신탁’, 기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정기부신탁’ 등이 보편화돼 있다.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일본의 경우 부모에게 분쟁 없이 재산을 받고자 하는 2세대 마케팅이 아니라 본인이 물려받아 자녀나 손주에게 물려주는 경우까지 대비한 3세대, 4세대 마케팅이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한 사람이 은퇴하고 늙어갈 때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단선적인 마케팅이었는데 이제 점차 세대를 넘는 금융상품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별 상품에 더해 생애 전반에 걸쳐 주기별로 금융을 설계할 수 있는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특징이다. KB국민은행은 ‘KB골든라이프’라는 브랜드로 은퇴·노후설계 시장을 공략 중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부터 은퇴 후 100세까지 생애주기별 전문가 진단을 통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한은행은 은퇴설계에 관심이 높은 4050세대를 위해 지난 2014년 10월 ‘S-미래설계’를 오픈한데 이어 작년에는 2030세대 젊은 고객을 위한 ‘S-미래 간편설계’를 시작했다. 고객 스스로 은퇴 자가진단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미래설계포유’ 앱을 통해 은퇴에 관한 유용한 정보는 물론이고 여행, 병원, 요양, 재가, 반려동물 등 고령사회에 관심이 높은 분야에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KEB하나은행 역시 원큐(1Q) 은퇴설계 서비스로 은퇴 후 매월 필요한 자금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 특정 연령에 도달하면 매월 받을 수 있는 생활비를 미리 보여주기 때문에 은퇴 후 소득절벽 구간에 대비해 연금 수령시기를 조절하거나 준비자금을 늘릴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은행도 ‘웰리치100’ 브랜드를 통해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한다.
송훈 KB국민은행 경영분석팀장은 “고령자수 증가와 치매 유병률 증가, 기부 활성화에 대한 움직임, 고령자 대상 사기 증가 같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금융권에서도 증가하는 고령 고객의 니즈 변화를 면밀하게 파악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