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의 창, 삼성 방패 뚫었다…승계작업·대가성·朴崔 공모 모두 인정
by이승현 기자
2017.08.26 08:00:00
[이재용 세기의 재판]
法 "이재용, 승계 위해 朴에 묵시적 청탁·지원"
朴·崔 공모관계 인정, 이재용 포괄적 지원 지시
승마지원·영재센터 지원 뇌물혐의 유죄 판결
삼성 측, 핵심 쟁점서 특검에 패배
|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서울구치소로 이동하는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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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는 25일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선고공판에서 뇌물공여 등 5개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65)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공모관계인 최순실(61)씨에게 회사의 돈을 이용해 거액의 뇌물을 건넸다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공소사실 논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삼성 변호인단은 경영권 승계작업 존재 여부와 지원자금의 대가성 여부, 이 부회장의 인지 여부 등 핵심 쟁점에서 재판부를 설득시키는 데 실패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의 3차례 단독면담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개별 현안자체를 청탁했다고 보지는 않았다. 다만 삼성이 삼성물산 합병과 합병 이후 삼성물산 주식처분 최소화 방안,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추진 등으로 미루어 포괄적 현안으로 승계작업을 추진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삼성의 이른바 ‘승마지원’(72억원)과 한국동계스포영재센터 지원(16억원)은 이러한 승계작업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인 청탁과 대가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작업 자체가 없었다고 한 삼성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가 최씨 딸 정유라(21)씨 개인에 대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또 많은 금액의 용역대금과 마필을 최씨가 실소유한 코어스포츠에 전달하고 이 과정이 은밀하게 진행된 점에 미뤄 대가관계가 인정됐다고 봤다.
영재센터 지원에 대해선 이 부회장 등이 이 곳이 정상적인 비영리·공익단체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고 박 전 대통령이 유독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을 요구한 점에 비춰 돈의 성격에 대가관계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최씨에게 돈을 건넨 것은 강요와 공갈에 의한 것으로 뇌물이 아니다’라는 삼성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간에 명시적 청탁은 없었지만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된다”며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했고 이 부회장 등이 소극적으로 뇌물을 공여한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204억원)에 대해선 대통령이 주요 대기업 총수들에게 모두 출연을 요구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승계작업이라는 현안 해결을 위해 돈을 냈다고 볼 수 없다며 대가성을 부인했다.
삼성의 승마지원이 뇌물공여죄가 되기 위해 필요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도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에도 최씨의 국정운영 개입을 수긍했으며 특히 최씨로부터 삼성의 지원상황을 계속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또 이 부회장 등이 삼성물산 합병과 2차 독대가 있었던 2015년 7월 이후에는 정씨 승마지원이 최씨 지원이며 이는 곧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금품공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승마지원 자금의 실제 수령자가 박 전 대통령이 아닌 최씨였던 만큼 특검과 삼성 변호인단은 두 사람의 공모관계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다퉜다. 재판부는 이 부분도 특검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에 더해 이 부회장이 승마지원에 대한 포괄적 지시를 하며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에게 경위를 보고 받았다고 봤다. 재판 막판 최 전 실장이 주도했을 뿐 이 부회장은 지원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삼성 측의 ‘모르쇠 전략’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이처럼 승마지원과 영재센터 지원 등을 뇌물공여로 인정하며 이와 연관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은닉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또 이 부회장이 국회에서 최씨와 정씨를 몰랐다고 답했다며 위증 혐의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날 판결에서 개별 쟁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구체적 증거와 증언 등을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의 부도적한 밀착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대통령과 대규모 기업집단의 정경유착이 과거사가 아닌 현실에서 있었다는 점에서 국민의 상실감은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과정이 오로지 이 부회장만의 이익을 위한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