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시민 폭행에 '불가피한 상황'이란 없다

by김성훈 기자
2017.06.02 07:00:00

지난 27일 오후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 인근에서 보이스피징 조직원으로 오해받아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폭행 당한 김모(31)씨. (사진=페이스북)
[이데일리 김성훈 김무연 기자] 지난 27일 서울 성동경찰서에 한 통의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피해자는 “딸을 납치했으니 돈을 보내라”는 협박 전화를 받아 600여만원을 입금했다고 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딸이 도서관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납치를 가장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로 확신했다. 때마침 피해자에게 추가로 돈을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은 피해자가 범인과 만나기로 한 장소인 서울 지하철역 3호선 옥수역으로 향했다.

오후 10시 40분쯤 잠복 중이던 경찰의 시야에 힙색(hipsack)을 맨 채 이어폰을 끼고 있던 김모(31)씨가 들어왔다. 보이스피싱 인출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착의였다. 보통 형사들 사이에서도 범인 특정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데 그날따라 현장에 있던 형사들 모두 김씨를 범인으로 확신했다.

경찰이 막아서자 놀란 김씨가 뒷걸음질쳤고 경찰은 검거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형사 2명이 김씨를 붙들려다 저항이 심해지자 2명이 합세해 김씨를 제압했다. 이 과정에서 폭행을 당한 김씨는 오른쪽 눈과 입술 등 얼굴과 오른쪽 팔 등에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조사 과정서 뒤늦게 김씨가 범인이 아님을 알았다. 압수한 휴대전화에 피해자와 통화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가 강제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경찰서를 방문한 뒤에야 김씨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김씨가 이같은 내용을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려 기사화되자 경찰은 뒤늦게 사과했다.

성동서는 29일 새벽 1시쯤 서장 명의로 경찰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일반 시민을 용의자로 오인해 체포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힌 사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했다.

서울청은 이후 보이스피싱 오인 폭행 사건과 관련해 성동서 형사과장 C경정을 서울청 경무과에, 강력계장 S경감과 강력6팀장 P경위, 강력팀원 3명 등 5명을 성동서 경무과로 각각 대기발령 했다. 또 당시 현장에 나간 강력팀 형사 3명과 팀장 P경위 등 4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해 놓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면 어이없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 자주 하는 옷차림을 했다는 이유로 검거하려 했다는 사실은 황당할 뿐이다.

경찰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때를 놓치면 범인을 잡기 어려운 보이스피싱 범죄 특성상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항변한다. 경찰 관계자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흉기에 따른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납득하기 힘든 변명이다.

경찰은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발 맞춰 ‘인권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시민을 범죄자로 오인하고 폭행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불신 또한 커지고 있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시민 1명을 검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김정훈 서울경찰청장의 발언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지난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경찰청 관계자들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