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아닌 즉각 퇴진"…성난 촛불 더 커지나
by이성기 기자
2016.11.30 05:00:00
수백만 촛불, 대통령 대국민 사과 이어 퇴진약속 이끌어 내
평화 비폭력, 전세계 새로운 이정표 제시
퇴진행동 "국회에 공 떠넘기로 책임회피·시간끌기" 비난
3일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선포…시민불복종 운동 전개
|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많은 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를 향해 촛불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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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사건팀] 한달간 이어진 447만(주말 촛불집회 연인원)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냈다. ‘비선실세’ 최순실(60·구속기소)씨의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거리의 분노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이끌어냈다.
비록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민심과는 동떨어졌지만,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며 국민 앞에 세 번씩이나 머리를 숙이게 했다. 전 국민의 3.5% 이상이 평화로운 집회를 이어갈 경우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이 50% 이상 된다는 미국 덴버대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의 ‘3.5%의 법칙’이 대한민국에서도 실현된 셈이다.
평화·비폭력 시위로 국내외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주말 거리의 촛불집회는 지난달 29일 시작됐다. 박 대통령이 첫 번째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지 나흘 만이었다.
‘최씨의 태블릿PC 안에 수정된 흔적이 있는 대통령 연설문과 각종 정책 자료 등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온 이튿날인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은 연설문을 전달한 사실을 인정하며 1차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질의응답조차 없는 사전 녹화를 통한 대국민 담화는 ‘무늬만 사과’라는 지적을 받으며 국민적 분노에 불을 붙였다.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모여든 국민들은 ‘국정농단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이때 만해도 규모는 주최 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1만 2000명)이었다.
언론의 끈질긴 추적 보도와 검찰의 수사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어두운 실체가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실망과 허탈감을 넘어 국민들 사이에서 분노가 일었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최씨가 독일에서 돌아왔고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2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검찰 조사뿐만 아니라 특검 수사에도 성실히 응하겠다며 몸을 낮췄지만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고 말하는 등 안일한 상황 인식은 그대로였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대학가에서 시작된 시국선언은 문화예술계·종교계 등 사회 전방위로 번졌고 이념과 계층, 세대 등을 불문하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함성이 커져 갔다.
지난 5일 2차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광장을 메운 20만 촛불 행렬이 지난주 26일 5차 촛불집회 때는 서울 150만, 전국 190만명이 함께하는 ‘촛불 바다’로 커졌다. 특히 이 자리에는 서울대 교수 100여명이 지난 1960년 4·19혁명 이후 56년 만에 처음으로 집회에 참여해 ‘박근혜 퇴진’ 등 구호를 외쳤다.
두 차례(10월 25일·11월 4일)에 걸친 대국민 담화가 거짓과 책임 회피 등으로 드러나자 성난 민심은 사그라들기는 커녕 더욱 거세졌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부적절한 발언과 검찰 조사에 불응한 박 대통령의 태도는 촛불을 더 키웠다.
| 1~5차 촛불집회 참여 인원. (자료=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경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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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대국민 담화에도 불구하고 ‘즉각 퇴진’을 촉구해 온 광장의 촛불은 더욱 번질 기세다. 거리의 민심에는 대통령 한 사람의 퇴진이 아닌 구(舊)체제와의 결별, 새로운 경제·사회 체제 구축에 대한 열망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 퇴진을 넘어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고 조국 서울대 교수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촛불 시민’은 개헌이 아니라 헌정 회복을 외치고 있다는 점”이라라고 지적했다.
‘박근혜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은 30일로 예정된 총파업과 주말 촛불집회를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퇴진행동 측은 “매주 100만, 200만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즉각적인 퇴진을 외쳤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적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시민불복종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정수 퇴진행동 공동대변인은 “대통령 본인이 결단하고 물러나야 할 문제이고 이후 국회가 풀어나가야 할 역할과 책임이 있는 것”이라며 “자신을 향한 분노를 국회에 떠넘기고 논란에서 비켜나가겠다는 고도의 정략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퇴진 행동 측은 다음달 3일을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로 선포하고 촛불집회와 더불어 △동시 경적 울리기 △동시 소등 △박근혜정권 퇴진 조기(弔旗)걸기 등 많은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시민저항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