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 예술로 완전무장하다

by김용운 기자
2015.08.21 06:16:05

리얼디엠지프로젝트 2015
철원 DMZ 접경서 ''동송세월'' 주제로
전단 살포 연상하는 인형모양 연
PC방서 전쟁게임 즐기는 군인 등
국내외 49개팀 지역밀착 현대미술 선봬
동송읍 금학로 일대서 23일까지
29일부턴 서울 아트선재센터서

‘리얼디엠지프로젝트 2015’ 전은 강원 철원군 동송읍의 여러 장소를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동송읍 금풍여인숙이 염중호·김태동·홍유정 작가의 작품을 설치한 공간으로 바뀌었다(사진=김용운 기자).


[철원(강원)=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동송에는 군인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DMZ에서 전투를 하지는 않았다. 군인들이 동송읍으로 외박이나 휴가를 나가 주로 가는 곳은 PC방이었다. PC방에서 군인들은 스타크래프트 등 게임을 하며 가상의 전투를 즐겼다.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루했겠지만 게임을 하는 그들의 표정은 달랐다. PC방에서 게임을 통해 전쟁에 참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흥미로웠다.”

프랑스 파리 로벤브룩갤러리의 전속작가인 알랭 드클레르크는 긴장감이 감도는 DMZ 접경지역과 가족단위의 여행객이 몰려드는 관광지가 공존하는 강원 철원군 동송읍에 매료됐다. 작가적인 관심을 가지고 동송읍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군인들을 관찰했다. 현실에서는 지루한 훈련만 반복하지만 PC방 게임 안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용감한 전사가 되는 그들의 상황을 6분 30초 분량의 영상으로 담고 ‘헤드쿼터’라 제목을 붙였다. 헤드쿼터는 군대에서 사단본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드클레르크의 모니터 속 영상에는 군인들이 파놓은 참호가 나온다. 카메라를 따라 참호로 들어가는 듯싶지만 정작 마주치는 것은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 각종 총소리와 파열음이 난무하는 그곳이 오히려 전쟁터 같다.

‘헤드쿼터’ 옆에는 진철규 작가의 미디어작품 ‘연날리기: 철원 D.M.Z’가 설치됐다. 진 작가는 지난 초여름 철원평야에서 비닐로 만든 인형 형상의 연을 날렸다. 하늘로 올라간 연은 자유롭게 춤을 추듯 들판 위를 날아다녔고 진 작가는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작품을 만들었다. 진 작가는 “DMZ 접경지역에서는 남북이 연을 띄워 전단을 살포하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며 “고대부터 군사적인 목적으로 활용한 연에 예술적인 의미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헤드쿼터’와 ‘연날리기’가 설치된 곳은 동송읍 동송농협 이평지점 지하에 있는 철원중고 총동문회 사무실이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클레르크가 ‘리얼디엠지프로젝트 2015’ 전에 선보인 ‘헤드쿼터’. 군인들이 외박이나 휴가를 나와 동송읍에서 PC방에 들러 컴퓨터게임을 하는 모습을 소재로 했다(사진=리얼디엠지프로젝트 기획위원회).


최전방인 철원군 동송읍 금학로 일대가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리얼디엠지프로젝트 2015’다. 동송시외버스공용터미널과 철원성당, 동송전통시장 등 동송읍 주요 장소에 49명의 작가와 팀이 휴전선 접경지역인 동송의 역사·문화적 특성과 결부한 작품을 전시했다. ‘리얼디엠지프로젝트’는 2012년부터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인 DMZ와 접경지역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동시대 미술 프로젝트를 표방하며 열리는 전시다.



올해의 주제는 ‘동송세월’이다. 동송은 철원군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 민간인과 군인이 한데 모여 사는 군사도시이자 넓은 철원평야를 터전으로 삼는 농업의 고장이다. 분단의 역사가 곳곳에 새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지난 몇개월 동안 동송을 오가며 작품을 구상했다. 정원연 작가는 전시의 소재를 얻기 위해 동송읍을 돌아다니다 ‘희망포토스튜디오’라는 사진관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앳된 표정의 군인들이 파티용 모자를 쓰고 장난감 총을 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봤다. 정 작가는 “주인의 허락을 받아 희망포토스튜디오 전면 유리창을 꽃다발 장식으로 꾸미고 목에 걸 수 있는 꽃다발을 사진관 곳곳에 놓았다”며 “꽃다발을 목에 건 군인들의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어 ‘꽃 좀 봐’라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군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청년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리얼디엠지프로젝트 2015’ 전에 나온 정원연 작가의 ‘꽃 좀 봐’. 동송읍 희망포토스튜디오와 협업해 작품을 전시했다.(사진=김용운 기자)


예년 전시와 달리 올해는 동송읍에 살고있는 주민의 참여를 확대한 것이 특징. 덕분에 전시회 측에서 나눠주는 안내지도만 들고 동송읍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군인과 면회하러 온 가족이 늘 오가는 동송읍 중심가가 일종의 거리전시장이자 갤러리가 된 셈이다.

전시를 모두 둘러보려면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린다. 외국작가들이 보는 분단 현실이 흥미롭고, 국내 젊은 작가들이 ‘동송’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작품 속에 담아낸 아이디어도 재미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즐기고 참여하는 ‘예술축제’로서는 아직 미흡해 보인다. 회화와 조각을 벗어난 현대미술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너무 앞서 나가 지역주민과 소통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김선정 리얼디엠지프로젝트 예술감독은 “10년을 계획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지역주민과 계속 소통해 휴전선 접경지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축제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23일까지다. 이후 29일부터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로 장소를 옮겨 전시를 이어간다. 다만 서울 전시가 ‘동송세월’의 현장인 동송에서 보는 것과 비교할 때 감흥의 밀도가 떨어질 것은 감안해야 한다.

철원평야에서 비닐로 만든 인형 형상의 연을 날리고 찰영한 진철규 작가의 영상 ‘연날리기: 철원 D.M.Z’(사진=리얼디엠지프로젝트 기획위원회)
김도희 작가가 ‘리얼디엠지프로젝트 2015’ 전에 선보인 미디어작품‘무한철책’의 한 장면(사진=리얼디엠지프로젝트 기획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