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만 0.28% 반등…트럼프 감세發 재정적자 우려 여전[월스트리트in]

by김상윤 기자
2025.05.23 05:14:52

장기채 매도 다소 진정…불확실성은 여전
“국채금리 실질적 하락해야 주식 고점 가능”
월러 이사 “관세 10%선 봉합시 하반기 인하 가능”
“비공식 통화합의 없다”…‘트럼프 경제책사’ 미란 일축
美공화당 청정에너지 세액공제 삭감에 태양광株 급락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장기 국채 금리 급등으로 전날 급락했던 뉴욕증시가 21일(현지시간) 일부 진정세를 보였다. 다우지수와 S&P500은 보합을 보였고, 나스닥지수는 소폭 반등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법안으로 불거진 재정적자 우려는 여전히 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분위기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 30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보합인 4만1859.09를 기록했다. 대형주 벤치마크인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04% 빠진 5842.01을, 반면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지수는 0.28% 오른 1만8925.74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국채 매도세로 촉발된 주가 급락은 이날 대형 기술주 강세에 힘입어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전일 급등했던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날 오후 4시기준 3.8bp(1bp=0.01%포인트) 하락한 5.051%를,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5.6bp 하락한 4.541%를 기록하며 소폭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국채 가격 상승).

국채 시장의 불안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 법안과 맞물려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고, 시장은 감세로 인한 재정수지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진통을 겪었던 대규모 감세안은 이날 미 하원을 가까스로 통과했다. 이번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크고 아름다운 법안(Big, Beautiful Bill)’이라 칭하며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감세와 군비 확대, 사회복지 지출 삭감 등을 담고 있다. 2017년 감세법(TCJA)의 영구화, 팁 소득 면세, 국방·국경안보 예산 증액, 메디케이드 및 교육 예산 삭감 등이 핵심이다.

공화당 내 강경파와 중도파 간 갈등으로 법안 통과가 지연됐지만,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중도와 강경보수 모두를 끌어안은 ‘누더기 수정안’을 제안했다. 메디케이드 수급자에 대한 근로요건 적용 시점을 2026년 말로 앞당기고, 뉴욕 등 고세율 지역 의원들의 요구에 따라 주·지방세(SALT) 공제 상한을 현행 1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4배 인상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독립 재정분석기관들은 해당 법안이 이미 급증한 재정적자를 더욱 확대시키며 향후 10년간 미국 연방정부의 누적 부채를 최소 3조달러(약 4142조원) 이상 늘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상원 심의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법안은 단순 과반으로도 통과 가능한 ‘예산 조정 절차(budget reconciliation)’를 통해 처리되지만,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대폭적인 수정을 요구하고 있어 재협상이 불가피하다. 마이크 존슨 의장은 독립기념일(7월 4일)까지 법안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당분간 입법 논의 과정에서 시장엔 상당한 불확실성을 줄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들은 이 감세안이 트럼프의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이미 하락하고 있는 국채에 추가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부채가 늘어나면 정부는 국채발행을 늘리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받아야 미 국채를 살 용의가 있다며 추가적인 보상(금리 프리미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나벨리에앤어소시에이츠의 루이스 나벨리에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채 시장의 압박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주식이 다시 고점을 노리려면 국채 수익률이 ‘실질적으로 하락’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UBS 글로벌 자산운용의 마크 헤펠레 CIO는 “무역 정책과 재정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시장의 변동성이 되살아났다”며 “국채 수익률이 높고, 관세 및 예산 리스크가 주목받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변동성이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에서는 미국이 재정적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을 경우 장기 국채 금리가 추가로 상승할 수 있으며, 이는 기업과 가계의 자금 조달 비용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사진=게티이미지)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여전히 금리 인하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부 완화 가능성도 언급됐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가 10% 수준에서 안정될 경우, 연준은 올해 하반기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관세가 7월까지 마무리되고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다면, 하반기 경제는 금리 인하를 수용할 만한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일 것으로 본다”면서도 “행정부가 다시 고율 관세로 복귀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은 훨씬 커지고 연준의 단기 금리 정책에 심각한 제약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사진=AFP)


곤두박질쳤던 달러가치도 소폭 오르고 있다. 오후 4시기준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 거래일 대비 0.39% 오른 99.94를 기록 중이다. 달러가치는 미 재정적자 확대 우려와 함께 최근 미국이 비밀리에 교역국의 환율 가치를 절상시키려는 협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망에 빠르게 약세를 보여왔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 책사로 불리는 스티븐 미란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최근 외환시장 일각에서 제기되는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 등 비공식 통화합의설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날 블룸버그 팟캐스트 ‘빅 테이크 DC(Big Take DC)’에 출연한 미란 위원장은 “미국은 현재 어떤 형태의 환율 협정도 전혀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지 않다”며 “환율정책은 명확하게 재무장관의 소관이며, 미국은 여전히 ‘강달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재무장관이 “미국과 환율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공개 발언한 이후, 외환시장에서는 미 행정부가 물밑에서 ‘달러 약세’를 유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된 바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부터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약달러를 선호해온 점 등이 의심을 키운 배경이다. 하지만 미란 위원장은 “그건 상대국이 꺼내는 의제일 뿐 미국이 제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시장 참여자들이 특정 믿음이나 내러티브에 집착하고, 그것이 반복적으로 보도되면서 확대 해석된다”며 “우리 입장은 수없이 반복해 명확히 밝혀왔다. 달라진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태양광 관련 주식은 일제히 급락했다. 가정용 태양광 설치업체인 선런의 주가는 37.05% 폭락했다. 이번 법안은 고객에게 장비를 임대하는 방식의 설치업체에 대한 세액공제를 종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줄리앙 뒤물랭스미스 애널리스트는 고객 메모에서 “이번 공화당 법안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대대적인 타격이며, 청정에너지 업계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평가했다. 구겐하임의 조셉 오샤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현재 지붕형 태양광 업계의 약 70%가 장비 임대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이번 법안은 선런과 같은 업체에 치명적이다.

태양광 인버터 업체인 엔페이즈와 솔라엣지의 주가도 각각 약 19.63%, 24.67% 하락했다. 지붕형 태양광 수요가 줄어들면서 인버터 판매에도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법안은 또 발효일로부터 60일 이후 착공되거나, 2028년 12월 31일 이후 가동을 시작하는 청정에너지 발전 시설에 대한 투자 및 전력 생산 세액공제도 종료하도록 했다. 이러한 공제는 그간 미국 내 대형 태양광 프로젝트 확대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유틸리티용 태양광 장비를 생산하는 어레이와 넥스트래커도 각각 3.09%, 3.13% 하락했다. 두 업체는 태양광 패널이 태양을 따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추적 장치를 생산한다.

반면 미국 최대의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인 퍼스트솔라의 주가는 4.30% 하락에 그쳤다. 제조업 세액공제는 이번 법안에서 상대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주에서는 애플(-0.36%)을 제외하고 소폭 반등했다. 테슬라가 1.92% 반등한 가운데 엔비디아(0.78%), 아마존(0.98%), 알파벳(1.13%), 마이크로소프트(0.51%) 등이 소폭 상승 마감했다.

국제유가는 사흘째 흘러내렸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0.37달러(0.60%) 내린 배럴당 61.20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7월 인도분 가격은 0.47달러(0.72%) 하락한 64.44달러를 기록했다. 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연합체인 OPEC+가 오는 7월 추가 증산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하방 압력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