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번역 맡은 황석희 "찌질했던 시절 돌아보며 감정이입했죠"
by김현식 기자
2024.12.10 06:00:00
뮤지컬 ''틱틱붐'' 번역가 황석희 인터뷰
요절한 ''렌트'' 창작자 조나단 라슨 자전적 작품
방백 반말체로 바꾸고 오역 잡으며 대본 최신화
"뮤지컬 번역, 작품에 의견 반영 가능해 매력적"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어요. 저 역시 ‘찌질했던 시간’이 길었으니까요.”
번역가 황석희(45)가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틱틱붐’ 작업 과정을 돌아보며 꺼낸 말이다. ‘틱틱붐’은 1996년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 조나단 라슨이 무명 시절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 쓴 작품. 뮤지컬계 유망주였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던 작곡가 존이 30대를 앞두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뇌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황석희가 대본을 번역하며 자신의 ‘찌질했던(?)’ 과거를 돌아봤던 이유다.
| 뮤지컬 ‘틱틱붐’의 황석희 번역가(사진=신시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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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그는 “저 또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시기를 ‘존’처럼 보냈다”며 “케이블 영화 채널 번역 일을 하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출근 안 하는 백수 취급을 받았다”고 웃었다. 이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는 가운데 차가운 시선을 받으면 존처럼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면서 “제가 그런 시기를 겪었기에 존의 감정을 이해하면서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틱틱붐’은 조나단 라슨이 1990년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 워크숍에서 1인극으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이후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 마이클과 댄서 연인 수잔을 추가한 3인극으로 변모했다. 국내에서는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 프로덕션으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5차례에 걸쳐 관객들과 만났고, 이번에 1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간 ‘데드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보헤미안 랩소디’ 등 다수의 할리우드 영화 번역을 맡아 남다른 센스를 발휘해 온 황석희는 34년 전 처음 쓰인 낡은 대본에 현 시대의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에 공을 들였다.
| 뮤지컬 ‘틱틱붐’의 한 장면(사진=신시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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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틱틱붐’의 한 장면(사진=신시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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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희는 “원작 대본의 완성도가 높지 않은 데다가 전문 번역가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14년 전 대본에 오역이 많아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넘버 가사를 포함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을 새롭게 번역했다”면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듯한 존의 방백은 존댓말에서 반말로 바꿔 브이로그 영상 같은 느낌이 나도록 했고,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에서는 올드한 표현을 덜어내 요즘 관객의 정서에 맞추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주로 영화계에서 활동하며 스타 번역가로 발돋움한 황석희는 뮤지컬 작품 번역도 틈틈이 해왔다. 앞서 ‘하데스타운’, ‘미세스 다웃 파이어’, ‘스쿨오브락’ 등의 대본을 한국말로 옮겼다. 인터뷰 자리에서 그가 건넨 명함에는 ‘세상을 번역하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특정 장르에 얽매여 활동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 뮤지컬 ‘틱틱붐’의 황석희 번역가(사진=신시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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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틱틱붐’의 황석희 번역가(사진=신시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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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희는 “뮤지컬 번역은 한국말로 바꾼 대사를 배우가 발화하게 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이미 완성된 영상을 토대로 하는 영화 번역과 차이점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연출 및 배우와 대화를 나누며 작품에 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 뮤지컬 번역의 매력”이라며 “‘틱틱붐’은 제 색깔이 가장 많이 담긴 작품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틱틱붐’은 내년 2월 2일까지 공연한다. 존 역에 배두훈, 장지후, 이해준이 트리플 캐스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