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美 전기차 재고에 업계 물량 조절…'출혈 경쟁'도 불가피

by공지유 기자
2024.01.24 06:00:00

전기차 수요 둔화…재고일수 113일 ‘급증’
생산량 축소·출혈 경쟁 나선 글로벌 車업계
"올해 판매량 늘어도 수익성 악화할 것"

[이데일리 공지유 기자]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 중 한 곳인 미국에서 전기차를 중심으로 신차 재고가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들은 이에 대응하고자 생산량 축소와 함께 가격 할인에 나섰다. 한정적인 수요 속에서 완성차업체 간 ‘출혈 경쟁’이 심화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23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미국 신차 재고는 266만대로 집계됐다. 신차 재고는 지난해 1월 175만대에서 같은 해 9월 206만대로 200만대를 넘어섰고 지난해 말에는 273만대로 최근 3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연말 밀어내기 영향으로 이달초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91만대(52%)나 증가했다. 재고일수로 치면 약 70일치에 해당한다.

신차 중에서도 특히 전기차 재고일수가 급격하게 뛰었다. 전기차 재고일수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113일로 내연기관(69일) 대비 급증했다. 통상 미국시장 적정 재고일수가 약 60~90일인 것을 고려하면 이미 적정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자동차 반도체 공급난을 겪으면서 백오더(주문대기) 물량이 늘고 이에 따라 미국 신차 재고는 2021년 초부터 급격하게 하락했다. 같은해 9월에는 82만5000대로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 반도체 수급난이 완화하며 지난해 1월 175만대로 늘어난 뒤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전기차 판매 증가율이 꺾이면서 전기차를 중심으로 과잉 재고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주요 기관들은 올해 전기차(B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합산한 친환경차 판매량이 승용차 기준 1750만~1780만대가량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올해 대비 약 20%가량 성장하는 것으로 여전히 성장세에 있기는 하지만, 전기차 기준으로 2021년 115.3%, 2022년 62.6%의 성장률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수요가 급격히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포드가 생산하는 EV차종 ‘F-150 라이트닝’ 픽업트럭.(사진=포드)
이처럼 수년간의 성장세가 둔화하며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친환경차 시장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요 완성차 업계에서는 재고물량 조절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포드는 최근 전기 픽업트럽 F-150 라이트닝의 생산계획을 매주 3200대에서 절반 수준인 1600대로 축소했다. 또 F-150 라이트닝 생산라인 직원 2100명 중 1400명을 내연기관 차량인 레인저 랩터와 브롱코·브롱코 랩터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제너럴모터스(GM)도 올해 상반기까지 4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 계획을 철회한 데 이어 전기 픽업트럭 등 일부 공장 가동 시점을 연기했다.

이같은 생산량 감소와 함께 글로벌 완성차 업계들은 가격 인하 등을 통해 가격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올해 초 독일에서 아토3 등 전기차 가격을 최대 15% 인하했다. 테슬라 역시 최근 독일에서 주요 차종인 모델Y 롱레인지와 모델Y 퍼포먼스 가격을 각각 9%, 8.1%씩 인하했다.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에서도 가격을 최대 10.8% 내렸다. 현대차도 이달 미국에서 아이오닉5, 아이오닉6 등 일부 차종에 한해 구매 고객에게 7500달러(한화 약 1000만원)의 현금 보너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판매량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결국 출혈 경쟁으로 가면서 판매대수는 늘어도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아직 전기차 시장이 정부 보조금 등에 의존해 판매량이 결정되고 흔들리는 불투명한 시장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