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vs 중·러' 우크라發 에너지전쟁 공포 커진다(종합)

by김정남 기자
2022.02.05 09:35:49

러 국영 가즈프롬, 중국과 가스 공급계약
중러 정상회담 맞춰…''에너지 밀월'' 방증
우크라發 최대 충격, 에너지 대란 가능성
유럽, 미국과 연료공급 차질 대응책 논의
지정학 위험 커지자, 유가 100달러 근접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우크라이나발(發) 에너지 전쟁이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에너지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은 에너지 조달과 관련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주요 원자재 생산국인 만큼 에너지 대란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FP 제공)


4일(현지시간) 로이터 등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가스 기업인 가즈프롬은 이날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와 연 100억㎥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극동 지역 가스관을 통해 중국으로 공급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지난 2014년 연 380억㎥의 러시아산 가스를 30년간 중국에 공급하기 위한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는데, 새로운 계약을 또 한 것이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 맞춰 나왔다. 두 나라의 밀월 관계를 방증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두 나라는 이날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간 정상회담 뒤 공동 성명을 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추가 확장에 반대한다”며 “나토가 냉전 시절의 이데올로기화한 접근법을 포기하길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반미를 공통 분모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가즈프롬은 “이번 계약은 양국에 유익한 가스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행보”라며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공급은 연 480억㎥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세이 밀레르 가즈프롬 사장은 “두 나라 파트너십의 높은 수준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는 2014년 계약 후 시베리아 ‘차얀다 가스전’에서 중국으로 이어지는 2000㎞ 이상의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을 신설했고, 2019년 12월부터 가스를 공급했다.

이번 ‘역대급’ 계약이 주목 받는 건 우크라이나 사태의 가장 큰 충격파로 에너지 대란 가능성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유럽은 연간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서방 진영이 러시아를 상대로 제재를 가할 경우 러시아는 가스 공급을 끊어버릴 수 있고, 이는 곧바로 유럽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일상이 마비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놓고 에너지 협력 행보에 나서는 건 그 연장선상에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FP 제공)


서방 진영은 분주해졌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와 카드리 심슨 에너지 정책 담당 EU 집행위원은 오는 7~8일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한다.

이들은 방문 첫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과 함께 에너지협의회를 공동 주재한다. 보렐 고위대표는 블링컨 장관과 별도의 양자 회담을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에너지 공급 차질 문제를 두고 머리를 맞댈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회담 후 성명을 통해 유럽에 대란 연료 공급 차질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점을 밝힐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이날 워싱턴DC에서 즈비그니에프 라우 폴란드 외무장관과 회담하면서 “러시아 앞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며 “하나는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와 외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의 길”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가 침략을 택하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나라다. 올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의장국이다. OSCE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함께 포함돼 있다.

지정학 위험이 커지면서 당장 국제유가부터 폭등세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2.26% 급등한 배럴당 92.3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4년 9월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장중 93달러를 넘기도 했다. 원유시장은 2014년 7월 이후 다시 100달러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대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