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소송 응했지만 각하됐다면...시효 중단 효과 없어"

by노희준 기자
2019.03.20 06:00:00

국가 상대 채무부존재 소 제기 원고 승소 취지 파기 환송
대법 "응소된 소송 각하돼 채권최고 효과만 있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원고의 소 제기에 답변서를 제출해 소송에 응했더라도 해당 소송이 각하되고 6개월 내에 별도의 시효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해당 응소(應訴)로는 시효가 중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민법은 시효중단 사유의 하나로 재판을 제기하거나 재판에 응하는 ‘재판상 청구’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런 응소로는 시효를 중단시키는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정부지원 사업의 보조금을 받던 A회사가 ‘보조금을 반환하라’는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 판결을 원소 승소 취지로 파기,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대법원은 “지원금 반환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응소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A회사는 2008년 4월 준정부기관인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과 생산정보화 시스템 구축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지원금 4500여만원을 받아 사업에 나섰다. 하지만 기술정보진흥원은 2010년 8월 A회사 사업완료보고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고 계약에 따라 지원금을 토해내라고 통보했다.



이에 A회사는 2013년 12월 기술진흥원장을 상대로 지원금 반환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행정소송(제1선행소송)을 제기했다. 기술진흥원장은 2014년 1월 답변서를 제출해 응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기술진흥원의 지원금 반환 요구는 행정처분이 아니라며 원심을 파기, 소를 각하했다.

이후 A회사는 2015년 11월 기술진흥원을 상대로 정부지원금 반환채무의 부존재확인을 구하는 민사사송(제2선행소송)을 냈다. 그런데 이 소송마저 피고를 국가를 삼아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 흠결 지적을 받아 각하됐다. 그러자 A회사는 2017년 9월 국가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고 국가는 이에 답변서를 제출해 소송에 응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정부가 A회사에 정부지원금 반환을 명할 수 있는 ‘정부지원금 반환채권’의 소멸시효가 지났는지 여부였다. 국가의 권리로서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권리의 소멸시효기간은 5년으로 하고 있다. A회사는 정부지원금 반환채권이 정부지원금을 지급한 2008년 12월이나 정부지원금 반환을 요구한 2010년 8월로부터 5년의 소멸시효기간을 도과해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1·2심은 A회사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지원금 반환채권의 소멸시효 기간 경과 전에 A회사 제기한 제1선행소송에 응소해 권리를 주장하고, 제1소송이 각하된 후 6개월 내에 제기된 제2선행소송에 응소해 권리를 주장한 것은 모두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재판상 청구에 해당한다”며 “지원금 반환채권의 소멸시효는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장이 제1선행소송에 응소한 2014년 1월에 중단됐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달라 판단했다. 재판부는 “기술진흥원장은 2014년 1월 응소해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했지만 그에 대한 판단 없이 제1선행소송이 2015년 8월 각하됐고 제2선행소송마저 2017년 8월 각하돼 두 응소는 모두 재판 외 최고(의무 이행 통지)의 효력만 인정된다”며 “기술진흥원장의 지원금 반환채권의 소멸시효는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5년 8월 완성됐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