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①팥빵에 입힌 구수한 추억…홍두당의 '온고지신' 성공 신화

by이성기 기자
2018.05.02 06:00:00

전국 ''빵지순례자''들의 성지(聖地) 입소문
국민 간식 팥빵에 ''색과 향'' 지역 스토리 입혀
3년 만에 매출 100억…''쇼핑 버킷리스트'' 우뚝

정성휘(33) 홍두당 대표가 창업 실패의 경험을 딛고 2015년 3월 롯데백화점 대구점에 근대골목단팥빵 1호점을 낸 지 3년 만에 매출 100억원의 실적을 올리게 되기까지 시련과 좌절, 재도전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홍두당)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욥기8장 7절)

자칭 국내 1호 ‘투어 푸드 크리에이터’(Tour Food Creator)인 정성휘(33) 홍두당 대표에게 성경에 나오는 이 구절보다 잘 어울리는 말은 없을 듯 하다. 정 대표는 소상공인사업자대출 등으로 마련한 자본금 수천만원으로 시작, 근대골목단팥빵 1호점을 연 지 3년 만에 매출 100억원대(2017년 말 기준)를 올린 외식업체 대표로 우뚝 섰다.

지난 2015년 봄 대구 시내의 작은 빵집으로 시작한 근대골목단팥빵을 대구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성장시키고, 현재 전국 18개 직영점을 거느린 ‘K푸드 브랜드’로 키워낸 그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말로 자신의 비결을 설명했다.

정 대표는 “대구 근대골목을 모티프로 복고풍의 근대 스토리를 입혀 기존 베이커리 브랜드가 갖고 있지 않은 고유의 브랜드 아우라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며 “새로운 것만 추구하기 보다 옛것에라도 자신만의 색(色)과 향(香)을 입히면 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 토박이인 그는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외식산업경영학을 전공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외식업 창업에 도전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안정적인 ‘취업’이 아닌 불안한 ‘창업’의 길을 선택한 셈이다. 정 대표는 “대기업 취업 준비를 하고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10년 뒤 모습을 그려보니 쳇바퀴 같은 삶이 암울하게 느껴졌다”며 “20~30대 젊은 시절을 그렇게 보내기엔 아쉽다는 생각이들어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음식의 고수는 재래시장에 있다’는 믿음으로 무작정 재래시장을 돌기 시작했다. 국제시장·자갈치시장·남포동시장 등지를 수십 번 오갔다. 그런 과정에서 각별한 인연을 쌓은 씨앗호떡 노점상 할머니에게 ‘특급 레시피’를 전수받을 수 있었다.

2012년 10월 부산 KTX 역사에 플래그십 스토어 콘셉트의 ‘호오탕탕’ 1호점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9.9㎡(3평) 규모에 불과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장사가 잘 돼 전국 각지에 잇달아 4호점까지 직영점을 연 다음 본격적인 가맹사업에 착수했다. 매장은 순식간에 10호점까지 늘었다.

마침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매장 입찰이 나와 서울 사무실로도 쓸 요량으로 레스토랑을 열었다. 임대료 정도 건질 생각이었지만 그게 패인이었다. 세월호 사고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이 터지면서 단체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기존 사업까지 발목이 잡혔고, 경험 보단 의욕이 앞선 20대 청년은 2년 반 만에 다시 빈 손이 됐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을 꿈꾸던 청년은 패전한 장수 신세로 고향에 내려가게 됐다.

재도전 아이템을 고민하던 그에게 가족은 큰 힘이 됐다. 영진전문대 국제관광조리계열 교수인 아버지와 제빵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하던 어머니와 머리를 맞댔다. 전주 풍년제과·대전 성심당처럼 대구만의 관광 콘텐츠를 담은 빵을 개발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선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섣부른 가맹사업’과 ‘무분별한 사업 확장’은 금물, ‘지역의 이야기가 담긴 스토리텔링형 브랜드’와 ‘계절이나 유행을 타지 않는 대중적인 음식’ 등이었다. 이 세 가지 원칙에 따라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근대골목단팥빵’이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2015년 3월 롯데백화점 대구점에 1호점을 내며 ‘제2의 출발’을 시작했다. 사이드 메뉴로 팔던 단팥빵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아예 이 메뉴 위주의 외식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때마침 대구 중구청은 일제강점기 근대골목을 테마로 한 골목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었다.

정 대표도 골목 초입에 테마에 맞춰 인테리어를 꾸민 근대골목단팥빵 본점을 열었다. 인테리어와 제품 패키지도 1920·30년대식으로 꾸몄다. 독특한 패키지와 인테리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며 빠르게 퍼졌다.

근대골목투어 5개 코스 중 근대문화골목 코스 입구에 위치한 본점은 근대골목 관광객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맛집이자 전국 ‘빵지 순례자’들의 성지(聖 地)가 됐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관광정보 사이트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는 60년 역사의 삼송빵집, 고로케 전문점 반월당고로케와 함께 ‘대구 3대 유명 빵집’으로 소개하고 있다. 약 3년 만에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인천국제공항 등 16개의 직영점을 내며 급성장했다.

올해 들어 ‘근대골목도나스’라는 두 번째 브랜드로 해외 유명 도넛 브랜드와 정면승부에도 나섰다. 지난 3월 서울 용산역사점에 1호점을 연 데 이어 4월 초 2호점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을 오픈했다.

한국식 도넛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으로, 도넛과 함께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인 하와이코나 커피와 핫초코·아이스티·레몬에이드 등 스페셜티를 제공한다. 생크림 단팥빵, 녹차 생크림 단팥빵, 소보로 단팥빵 등 대구근대골목단팥빵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베이커리 메뉴 6종도 포함됐다.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백화점 식품관 및 기차역사 상권을 우선 공략, 올해 안 전국에 근대골목도나스 40개 매장을 열 계획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와 일본의 디저트 기업들도 국내로 속속 진출하고 있는 시대, 그가 생각하는 차별화 전략은 ‘사고의 전환’이다.

정 대표는 “주요 고객층인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맛과 패키지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등 새로운 트렌드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초고령화 시대가 눈 앞이고 베이비 부머 세대 역시 주요 소비자층이 될 텐데 그런 세대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상품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목표는 던킨도너츠이나 크리스피크림도넛 등 외국계와 붙어도 뒤지지 않는 ‘한국식 도나스’ 브랜드로 키우는 것. 정 대표는 “용산역사점 문을 연 뒤 중국인 보따리상 ‘다이궁’(代工) 손님들의 호응으로 볼 때 아시아권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전국 배송 시스템 등을 갖춘 만큼 이를 발전시켜 기업 간(B2B) 사업에도 진출할 생각이다. 정 대표는 “호텔을 거쳐 단팥빵과 도나스를 기내식 메뉴로 입점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도전으로 ‘로컬 베이커리 성공 신화’로 주목 받고 있는 정 대표의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