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육아]같은 동화책을 7번 읽었다…보육교사 체험기
by김정현 기자
2017.06.12 06:30:00
작은육아 3부 ''어린이집부터 아빠육아까지''
교사 2명이 아이 34명 맡아..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분주
아이들 낮잠 시간엔 부모들에게 보낼 일지 쓰느라 못쉬어
"맡은 아이 많아 신경 못쓰는 아이 생길 때는 죄책감"
미뤄둔 서류 처리하면 9시 퇴근 일쑤…교사 충원해야
이데일리는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와 함께 ‘적게 쓰고 크게 키우는 행복한 육아’라는 주제 아래 연속 기획을 게재합니다. 해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육아 부담을 줄여 아이를 키우는 일이 행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작은육아’ 기획시리즈에 많은 독자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애 보아 준 공은 없다’고 했다. 남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아무리 잘 봤다 해도 한 번 실수로 아이에 탈이 생기면 원망만 사게 된다는 뜻이 담긴 뼈아픈 속담이다. 어린이집 일일 교사 체험이 앞둔 기자는 지레 겁부터 났다. 아이들이 잘못해서 다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며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수잔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어린이집 등원 시간은 오전 8시 50분. 등원 시간보다 조금 이른 오전 8시 30분쯤 어린이집에 도착해 전미송 원장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교육 받았다. 전 원장은 기자가 긴장한 기색을 보이자 “다른 어린이집과 달리 한 반에 교사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고 아이들이 낯을 가리기 때문에 기자가 크게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안심시켰다. 오전 수업시간부터 낮잠시간인 오후 2시까지는 유아(3~5세)반, 낮잠 시간부터 하원시간까지는 영아(2세 이하)반에서 보육교사들을 도와 아이들을 돌봤다.
오전 9시, 만 3~5세 아이들만 모아놓은 소나무반에 들어서자 34명 아이들이 교실에 모여 색종이를 접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낯선 환경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으니 현석(5)군이 기자의 옷자락을 잡고 “동화책을 읽어달라”며 교실 한쪽 구석으로 이끌었다.
그 곳으로 가니 아이들 7명이 옹기종기 모여 각자의 동화책을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기자를 쳐다봤다. 애벌레가 나비로 탄생하는 내용의 두 페이지짜리 동화책을 먼저 읽어줬다. 기자가 책을 읽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각자 애벌레 인형과 나비 인형 등을 들고 이야기에 맞춰 구연을 했다. 아이들은 모두 주인공인 애벌레 역을 맡고 싶다고 다퉜다. 결국 아이들 모두가 한 번 씩 애벌레 역을 할 수 있게 같은 동화책을 일곱번이나 읽어야 했다.
오전 11시는 어린이집 주변 숲길을 다 함께 산책했다. 최은경 선생님이 교실 앞으로 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선생님의 노랫 소리가 들리자 저마다 흩어져 놀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노래 1절이 끝나자 모든 아이들이 줄을 서서 모였다. 최 선생님은 “아이들이 아직 많이 어리기 때문에 한 번에 이들을 집중시키려면 노래를 부르거나 새로운 놀이를 제안하는 등 주목을 끌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수잔나어린이집 소나무반 아이들이 어린이집 근처 공원으로 줄 서서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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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생님은 교사 한 명 당 맡아야 할 아이들의 수가 많다보니 일과 도중 쉴 틈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어린이집은 만 3세 유아반의 경우 교사 한 명당 원아 15명, 만 4~5세 유아반은 교사 한 명 당 원아 수 20명을 초과할 수 없다. 기자가 맡은 소나무반은 교사가 두 명, 아이들은 34명이다.
최 선생님은 “정부가 아이들의 성장을 고려해 인원 수를 제한해놨지만 여전히 많은 편”이라며 “한 명이 맡아야 할 원아 수가 10명이 넘다보니 상대적으로 신경써주지 못하는 아이들도 생겨 죄책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오후 2시부터 한시간동안 낮잠 시간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잠들어도 교사는 쉴 수 없다. 수잔나 어린이집 교사들은 매일 학부모 모두에게 아이들의 하루 일과와 상태를 전하는 편지를 쓴다.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궁금해하고 걱정할 부모들을 안심시켜주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쉴 틈이 없기 때문에 낮잠 시간을 이용한다.
오후 3시부터는 만 1~2세 영아들이 모여 있는 도토리반으로 이동했다. 영아반은 아이들의 나이가 많이 어리기 때문에 만 1세 반은 교사 한 명 당 원아 5명을, 만 2세 반은 원아 7명을 넘길 수 없다.
도토리반은 교사 두 명과 보조교사 한 명이 아이 10명을 맡고 있다. 유아반에 비하면 돌봐야 할 아이들의 수가 훨씬 적지만 쉴 틈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말이 서툰 나이라 표정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야만 아이들이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필요로 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 특성상 스킨십과 애착 관계 형성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해서 아이들을 자주 품에 안아 보살펴줘야 한다.
오후 4시가 되자 도토리반 신정은 선생님이 아이들을 한 명 씩 불러 양치를 하고 손과 얼굴을 씻겼다. 씻기 싫다며 울상을 짓는 아이들은 목마를 태워주거나 무릎에 앉혀 말을 태워주며 달랬다.
오후 5시 하원 시간이 되자 부모들이 하나둘 아이를 데리러 왔다. 이 때부터 오후 7시까지는 맞벌이 부모들을 둔 아이들을 위한 종일반이 열린다. 오후 7시 30분 마지막 아이가 부모 품에 안겨 돌아가도 교사들의 업무는 끝나지 않는다. 미뤄둔 각종 서류 작업들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일지를 쓰고 다음 수업 때 사용할 교구들을 만들고 나면 오후 9시 이후에야 퇴근할 때가 많다.
신영희(50) 주임교사는 “어린이집 대부분 교사 수가 터무니 없이 부족한 편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 개개인의 발달 속도를 고려해 세심하게 보육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교사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문제지만 아이들의 성장 측면에서도 어린이집 교사 당 원아 수를 적절한 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