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명암]③윗돌 빼 아랫돌 괸다고..청년 백수 아들 정말 취직되나요

by이재호 기자
2015.09.15 06:00:02

[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중견기업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태평(54)씨는 최근 퇴근길이 유쾌하지 않다. 며칠 전 아들과 임금피크제를 주제로 밥상머리에서 언쟁을 벌인 뒤 집안 내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부모 세대의 이기심이 자녀 세대의 취업을 막고 있다는 아들의 말도 서운하고, 임금피크제가 청년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에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아들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당장 내년에 정년에 도달하는 자신의 처지도 막막하다. 정년이 연장된다고 해도 임금피크제로 급여가 줄면 살림은 더욱 빠듯해질 수밖에 없다.

노·사·정 타협으로 임금피크제 시행을 위한 물꼬를 트는 데 성공했지만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로 법제화가 이뤄지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정부와 경제계가 주장하는대로 임금피크제가 청년 고용 활성화로 이어질 지에 대한 의구심이 큰 상황이다. 곳간에 돈을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들이 비용 부담 때문에 신규 인력 채용을 꺼리고 있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노동시장 개혁을 성공으로 이끄는 첩경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임금피크제가 중장년층 근로자들에게 정년 연장의 기회를 주고 청년층에게는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상생 방안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임금피크제가 청년 고용 확대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늘리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힘들다”는 명제가 성립돼야 한다.

그러나 지난 7년 간 국내 3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206조원에서 551조원으로 166.5%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사내유보금은 169조5000억원으로 7년 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났다. 비용 부담 때문에 청년 고용에 나서기 어렵다는 대기업들의 하소연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이유다.

지난 2003년 7월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최근 5년 간 정규직 직원 수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2010년 2095명이었던 정규직 직원 수는 2011년 2082명, 2012년 2033명, 2013년 2071명, 지난해 2096명 등으로 답보를 거듭했다.

신보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직원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고용 안정을 이루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이라며 “임금피크제로 인건비가 줄어든 것은 맞지만 공공기관이라는 특성상 신규 채용을 공격적으로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이지만 연세대 교수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4년 간 8만~13만개의 청년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주장하지만, 이 수치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지난 11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 교수의 보고서는 청년층 신규 일자리를 1년짜리 단기고용으로 상정했다”며 “임금피크제로 인한 인건비 절감분을 1인당 인건비로 나누면 청년 일자리는 최대 8186개 정도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결국 임금피크제는 고용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정부 주도로 도입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며 “청년 일자리 창출은 임금피크제와 별도로 논의돼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성장 한계에 부딪힌 대기업에 대규모 채용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한 재계 인사는 “대기업들이 사람을 많이 안 뽑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활용할 데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압박하고 기업이 마지 못해 채용에 나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일자리를 늘릴 경우 기업이 고용유지를 위해 지불하는 교육·연수와 복리후생비를 비롯해 필요경비가 더 지급돼야 한다는 점도 기업들에게는 부담이다. 정부가 이를 위해 추가고용에 따른 세제 혜택 등 제도적인 보완책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대안은 중소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배경이다. 만성적인 인력난에 신음하고 있는 중소기업에 인재가 몰리게 해야 청년 취업 절벽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출산휴가 지원금, 병력특례 도입 등 청년층이 중소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면 고용 확대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노동시장 개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에 가린 다양한 해법들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