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이 희망이다] [중] 성장 저해하는 '신발 속 돌멩이' 제거 시급

by김성곤 기자
2013.10.02 07:52:46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노조에서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한 중견기업 A사는 법원이 통상임금 범위기준을 확대할 경우 3년치 소급분 400억원을 일시 지급하고 연간 100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앞으로 각종 수당과 퇴직금 추가 지급도 불가피해 A사 대표는 차라리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심정이다.

매출 50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 B사는 가업승계에 따른 예상 상속세액이 무려 400억원에 달한다. 현금 자산이 부족한 탓에 상속세 마련을 위해 주식을 매각하면 최대 주주 지분율이 절반 이상 급감해 경영권 방어에 비상이 걸린다.

중견기업 성장 가로막는 ‘신발 속 돌멩이’ 구조/ 자료 중견련
‘신발 속 돌멩이’가 중견기업의 도약을 막고 있다. 최근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각종 규제가 눈덩이처럼 늘면서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신발 속 돌멩이는 중견기업의 글로벌 전문기업 도약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인 셈이다.

중견기업계는 ▲가업승계 ▲일감 몰아주기 ▲통상임금 ▲중소기업 적합업종 ▲R&D 세액공제 ▲공공구매 ▲금융부담 ▲인력확보 ▲화평법·화관법 등 9대 애로사항 해결을 위해 뛰고 있다. 특히 가업승계, 일감몰아주기, 통상임금 등 경영환경의 변화는 존립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중대 사안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 기준 확대 여부다. 정구용 인지컨트롤스 회장은 “중견련 조사 결과, 통상임금 범위 확대 시 과거 3년간 소급해 지급해야 할 비용은 회사당 평균 50억원 수준으로 최대 460억원을 부담해야 하는 회사도 있다”며 “사내 유보금이 바닥나서 문을 닫아야할 기업들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회장의 지적대로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이 노동계의 손을 들어줄 경우 후폭풍은 엄청나다. 실제 지난 8월 중견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의 83.8%가 ‘통상임금 확대가 부당하다’며 ▲연장·야간근무 축소 ▲ 채용중단과 구조조정 ▲ 생산라인 해외이전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가업승계와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따른 상속·증여세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대기업의 편법 증여를 막기 위한 취지였지만 지난 7월 국세청의 증여세 신고안내문 발송 대상 1만명 중 99%가 중견·중소기업이었다. 특히 중견기업 계열사간 거래는 편법증여가 아닌 비용 절감, 투자위험 분산, 기술유출 방지 등 경영전략적 차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가업승계 역시 과다한 조세부담으로 중견기업을 옥죄고 있다. 정부가 최근 가업승계 공제대상을 매출 3000억 기업으로 확대했지만 업계는 1조원까지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히든챔피언으로 유명한 독일은 가업상속 공제대상 및 한도에 제한이 없다.

/자료 중기청
또 중기 적합업종,R&D세액공제, 공공구매, 금융부담 등은 이른바 ‘피터팬 신드롬’을 조장,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저해하는 대표적 애로사항이다. 중견기업으로 올라설 경우 각종 지원이 단절되고 규제만 늘어 성장보다는 중소기업 잔류를 선택하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지난 2002년 이후 창업 기업 중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제조기업은 89개사이지만 분할 또는 외투기업을 제외하면 5개사에 불과하다. 매출액 500억원 이상 중규모 기업 3153개사의 중소기업 졸업 직전 성장 중단 현상도 확인됐다. 아울러 지난 2006년부터 5년 동안 연평균 73개의 중견기업이 근로자 감소 또는 지분변동을 통해 중소기업으로 회귀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중소→중견→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사다리 단절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매출액 5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으로 성장 부담을 단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견기업계는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중견기업 성장사다리 구축 방안’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가업승계, R&D 세액공제, 인력 및 판로 확보 등의 분야는 향후 지속적으로 보완·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존 중소기업 보호 위주의 정책 틀을 과감히 깨야 한다”며 “그동안 강소 중견기업에 대한 정책적 포커싱이 없었다. 중견기업의 애로를 해소하고 육성하는 게 오히려 중소기업을 키우는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