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의로 '톱다운' 경제 효과…한일 반도체 협력 고민해야"[인터뷰]

by조민정 기자
2024.06.18 06:00:00

'한일 전문가'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반도체, 한일 협력의 상징이자 갈등의 상징"
정상회담 계기로 해동…"회복시키는 과정"
"숨겨진 '불편한 문제'도 회담 자리에 나와야"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정상 차원의 만남은 경제, 문화 분야에서도 협력을 부흥시키는 ‘톱다운(하향식) 효과’가 굉장히 확실합니다. 한일 관계뿐 아니라 한일중 관계도 마찬가지겠죠.”

‘한일 관계 전문가’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연구원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외교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도 사실 경제 분야에선 회의를 이어가는 등 교류는 있었다”며 “그렇지만 정상 차원에서 협력하자는 메시지가 내니까 정례적으로 하던 회의를 한 번 더 하거나, 일본에 가서 회의를 개최하는 등 각종 시너지 효과가 나고 있다”고 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조민정 기자)
최 위원은 한일 관계, 동북아 다자협력 등을 연구하는 전문가다. 외교안보 분야의 대표적인 민간 싱크탱크 아산정책원구원은 고(故) 아산 정주영 현대 창업자를 기념해 세운 기관이다.

최 위원은 외교적인 만남은 다양한 경제, 문화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건 이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가 서로 양국을 방문한 게 모두 12년 만이었다”며 “그만큼 오랫동안 관계가 안 좋았고 (지금은) 그걸 회복시키는 과정이다. 마이너스에서 플러스가 아니라 제로가 됐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며 악화했다. 일본은 반도체 수출규제로 대응했고 국내에서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외교뿐 아니라 경제, 문화 등이 얼어붙었고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반도체 소재 국산화를 추진했다. 일본은 지난해 3월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약 4년간 이어온 반도체 수출규제를 모두 해제한다고 밝혔다.

최 위원은 “당시 반도체는 반일 시위의 트리거(촉발제)였다. 반도체가 한일 협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일 갈등의 상징이기도 한 이유”라며 “갈등의 소재를 이제 협력의 대상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는 경제 안보와 연관되고 실제로 한일이 경쟁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쉽게 협력할 수 없는 특수성도 있다”며 “경쟁하면서 어떻게 협력을 같이 가야 하는지는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답했다.

한일 관계는 점차 유연해지고 있지만 과거만큼 적극적인 반도체 협력 사례를 찾아보긴 어렵다. 온쇼어링 정책(Onshoring·자국 내 생산 시설 유치)과 같이 자국주의 기조가 강해지면서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실제 반도체를 제외한 청정에너지 등 다른 분야에선 한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실질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제1회 한일 수소 협력 대화를 개최한 게 대표적이다.

최 위원은 양국이 현재 거론하지 않는 ‘불편한 문제’도 논의하며 궁극적인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문제를 비롯해 불편한 문제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정상 간 만남을 계속하면서 내면에 깔려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