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 경고에도 자전거·킥보드는 `무법자`…보행자가 위험하다

by황병서 기자
2023.11.10 06:00:00

[보행자가 위험하다]①
‘보행자의 날’ 맞아 서울 주요 거리 5곳 다녀보니
‘킥라니’에 자전거 ‘민폐족’까지 인도서 이동
“바짝 다가올 때 무섭다”, “길 외진 곳으로 걸어” 하소연도
전문가 “솜방망이 처벌 문제…안전 교육 등 강화해야”

[이데일리 황병서 이영민 기자] “아이고 깜짝이야.”

지난 7일 오후 5시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여의교에서 만난 김모(16)양은 뒤에서 오는 자전거가 폭주하듯 옆을 지나갈 때마다 부딪히지는 않을까 계속해서 고개를 돌렸다. 이 다리에는 ‘자전거 탑승 금지·킥보드 탑승 금지’란 문구가 내걸려 있었지만, 이러한 주의 문구가 무색할 만큼 자전거와 킥보드를 탄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가고 있었다. 김양은 “에어팟을 끼고 걷다가 옆에서 오는 자전거를 피하지 못해 다칠 뻔한 적이 있다”면서 “길을 걸을 때 에어팟을 될 수 있으면 끼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는 11일 ‘보행자의 날’을 맞아 이데일리가 서울 주요 도로(연세로·장충단로·테헤란로·신림로·여의대방로 등)를 점검한 결과, 보행자들은 인도에서 자전거와 킥보드를 탄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다. 보행교통 개선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국가기념일로 만들어졌지만, 보행자들은 절대적으로 보호 받아야 하는 인도에서조차 안전하지 않았다.

지난 7일 오후 1시께 서울 강남구의 역삼역 일대. 도로 위 무법자로 불리는 ‘킥라니(킥보드+고라니)’가 나타나는 곳으로 유명한 이 일대에서는 인도 위에서 전동 킥보드를 탄 사람을 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보도블록 공사까지 겹쳐 안 그래도 좁아진 거리에 전동 킥보드를 탄 이용자들이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까지 보였다. 건널목과 차도, 인도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하는 모습이었다. 현행법상 전동 킥보드는 차도나 자전거 도로 등으로 다녀야 하지만 이를 무시한 사람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인도 위에서 킥보드나 자전거를 탄 이용자들 때문에 점심시간을 맞아 거리를 걷던 회사원들을 이들을 피해 걷기 일쑤였다. 킥보드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행자들과 바짝 붙어 주행하면서도 아무런 경고 신호도 하지 않아 공포감마저 들게 했다.

회사원 김모(37)씨는 “속도가 많이 나는 킥보드는 사고가 날까 무섭고 넘어지시는 분들도 크게 다치는 것 같다”면서 “특히 뒤에서 바짝 다가올 때가 가장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린 자녀와 함께 걷는 부모들도 위험하다고 하소연했다. 회사원 임모(32)씨는 “아이와 다닐 때도 킥보드가 튀어나와 버리면 너무나 무섭다”면서 “아이들도 움츠리게 되고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차 관리원 A씨는 “이곳에서 킥보드 탄 사람하고 보행자하고 사고 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고 말했다.

이날 돌아본 연세로와 장충단로, 신림로 등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자전거를 탄 이용자들이 보행자들 사이를 급하게 지나가며 부딪힐 뻔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기자가 이 길들을 걷는 도중에도 옆으로 자전거나 킥보드를 이용한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연세로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1)씨는 “킥보드 탄 사람들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날 때가 가장 두렵다”면서 “마음 편하게 걸으려고 길에서 외진 곳으로 걷는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행자 교통사고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분석 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보행사고 건수는 3만 6601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에는 3만 5665건으로 감소세를 보였지만 지난해에는 3만 7611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사망자 수는 같은 기간 1093명에서 1018명, 933명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했다. 부상자 수는 3만 6939명에서 3만 6001명을 기록한 뒤 지난해엔 3만 8088명에 달했다.

특히 PM(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사고의 급격한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승용차 사고가 지난 2020년 13만 6878건에서 지난해 12만 9790건으로 감소 추세를 보인 반면 PM(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사고는 같은 기간 897건에서 2386건으로 급증했다. 자전거 사고도 5500건 안팎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다.

현행법상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차로 분류된다. 따라서 자전거도로를 이용하거나 자전거 도로가 설치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에 붙어서 통행해야 한다. 전동킥보드의 경우도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분류돼 오토바이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따라서 도로나 자전거 전용 도로 등에서만 운전해야 한다.

문제는 자전거와 킥보드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인도 위에서 운전한다는 점이다.

이에 실효성 없는 법안이 개인형 이동장치 사고의 증가 요인인 만큼, 국회 등이 법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PM산업협회장인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동킥보드 최대 속도를 시속 25㎞에서 20~15㎞ 미만으로 낮춰야 하고, 16~18세 등을 상대로 집중적인 안전 교육 등이 법에 담겨야 한다”며 “싱가포르처럼 PM면허 도입 등을 고려하거나 일본처럼 시속 6km 미만의 속도로 인도에서 주행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