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숨진채 발견된 영아…베이비박스 정말 필요할까요

by정병묵 기자
2020.11.07 08:15:00

영아 시신 충격…존치 여부 도마에 다시 오른 베이비박스
고유정 ‘前남편 살해’ 무기징역 확정…‘의붓아들 살해’는 무죄
30년 만에 모습 드러낸 이춘재 반성 와중에 ‘이미지 관리’?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양육을 포기한 영아를 임시로 보호하는 간이시설인 ‘베이비박스’ 앞에서 신생아가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줬습니다. 발견 당시 아이에겐 탯줄과 태반이 붙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존치 여부를 두고 찬반 의견이 극명했던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키워드는 △베이비박스 논란 재점화 △고유정 무기징역 확정 △30년 만에 모습 드러낸 이춘재 등입니다.

3일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옆 드럼통 주변에서 수건에 싸여 있는 남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아기는 탯줄과 태반이 붙어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은 아이가 발견됐던 드럼통 인근. (사진=뉴스1)
3일 오전 5시 30분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주변에서 수건에 쌓인 남아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2일 오후 10시쯤 한 여성이 영아를 공사 자재 속 드럼통 위에 두고 가는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4일 경찰이 검거한 20대 여성 A씨는 아이의 생모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아이는 교회 관계자가 발견하기까지 영상 3도의 추위 속에 7시간 넘게 버려져 있었습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으면 알람과 조명이 켜집니다. 그런데도 A씨는 베이비박스에서 1m 떨어진 공사자재 더미 위에 아이를 놓고 갔습니다. 경찰은 드럼통 아래에서 영아 시신을 발견한 점으로 볼 때 아이가 유기 당시엔 살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이가 죽었는지 몰랐다”고 말했고 범행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6일 A씨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증거가 모두 확보돼 있고 신체 및 건강상태에 비춰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영아유기치사혐의를 받는 20대 김모씨가 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나오고 있다. (사진=공지유 기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 도입된 지 10년이 넘은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는 행위는 현행법상 영아유기에 해당하는 불법입니다. 인권단체들은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하고 아동 인권을 침해한다고 반대합니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는 출생 기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이비박스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많은 영아가 화장실이나 길거리에 버려지는 상황에서 영아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전 세계적으로 베이비박스 운영 중단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몇 안 되는 베이비박스를 둘러싸고 이번 참담한 사건이 벌어진 만큼 당분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이 고유정(38)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5일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살인·사체손괴·사체은닉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는데요. 고는 지난해 5월 25일 오후 8시 10분에서 9시 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 펜션에서 전 남편인 강모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이어 시신을 훼손한 뒤 바다와 쓰레기 처리시설 등에 버린 혐의(살인 및 사체손괴·은닉)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고는 같은해 3월 2일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자고 있는 의붓아들 홍승빈(사망 당시 5세)군의 등 위로 올라타 손으로 피해자 얼굴이 침대에 파묻히게 눌러 살해한 혐의도 받았습니다. 1심과 2심은 전 남편에 대한 계획적 살인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고유정의 주장과 달리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 강씨 사망 전 수면제와 흉기를 구입한 점 등을 들어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면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심, 2심 법원은 “의붓아들이 고유정 고의에 의한 압박행위가 아닌 함께 잠을 자던 아버지에 의해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검찰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는데요.대법원은 “고유정이 전 남편 강씨를 살해하고 사체를 손괴·은닉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를, 의붓아들을 질식시켜 살해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판시했습니다. 한편 승빈군의 아버지 홍모씨는 “고유정은 승빈이가 숨진 후에도 자신의 어머니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애기 아니니 얘기하지마’라고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적을 보였다”면서 경찰의 초동수사 부실도 아들의 사망 사건을 미궁으로 빠뜨렸다는 입장입니다.

이춘재 고교시절 사진(사진=연합뉴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경기 화성지역 일대에서 발생한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인 이춘재(57)가 지난 2일 법정에 나와 사건 발생 3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2일 오후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8차 사건 재심’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한 것인데요. 법원이 이춘재의 얼굴 공개를 불허하면서 언론에 보도되지는 못했지만 이데일리가 재심 법정 현장에서 확인한 이춘재의 모습은 “눈은 옆으로 째지고, 얼굴을 좀 길고 코가 크다”라는 과거 목격자의 증언과 일치했습니다. 이춘재는 짧은 반삭 머리에 희끗희끗한 머리 색깔, 얼굴 곳곳에 퍼진 주름 정도만 달라졌고 고교시절 사진을 그대로 오려 현실에 붙인 듯 했습니다. 이춘재는 이날 “제가 저지른 범행을 반성하며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죄한다”고 했지만 당시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내 의지로 벌어진 일이 아니며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며 모호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춘재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성욕 때문에 죄책감 없이 범행을 저질렀지만 일종의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적인 욕구가 이춘재의 범행 동기지만, 본인이 얘기하기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며 “그 와중에 이미지 관리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사이코패스는 선호하는 피해자 유형이 있고, 이춘재의 경우는 (대상이) 여성”이라며 “여성에 대한 성적 욕구가 범행 동기고,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행위에 대한 변명이나 합리화하는 행동이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춘재의 사과에 대해서도 공 교수는 “인지적인 사과일 뿐 정서적인 공감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사과는 아니다”라고, 오 교수는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공감을 하고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닌 일종의 ‘립서비스’”라고 해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