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쾌감' 주는 마케팅일까 '주객전도'된 얄미운 상술일까
by이성웅 기자
2020.08.07 04:00:00
[굿즈 경제학]②한정판 마케팅 갑론을박
스타벅스 래디백 받으려 커피 300잔 주문도
"한정판·선착순…소장 욕구 꿰뚫어"
"미끼 상품으로 지나친 상업성 조장"
[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1999년부터 2000년대 초반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먹어봤을 법한 국민 빵이 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샤니의 ‘포켓몬스터 빵’이다. 인기 비결은 빵 자체가 아니라 빵과 함께 들어있던 포켓몬스터 ‘띠부띠부 씰’이다. 아이들이 총 151종에 달하는 1세대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모두 모으기 위해 빵을 사서 스티커만 챙긴 뒤 빵은 먹지 않고 버려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 동봉된 ‘띠부띠부 씰’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샤니 ‘포켓몬스터 빵’(사진=SPC삼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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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이 지난 2020년엔 일명 ‘300잔 빌런(히어로 영화 속 악당)’이 등장했다. 지난 5월 스타벅스는 여름 프리퀀시 이벤트 사은품으로 소형 캐리어 ‘서머 레디백’을 선보였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상품 공개 직후부터 조기 품절이 예상된 상품이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선 이벤트 시작 당일 사은품을 받기 위해 커피를 300잔 주문한 뒤 레디백 17개만 챙겨 돌아간 고객도 있었다.
1990년대부터 2020년까지 꾸준히 진화해 온 ‘굿즈(Goods) 마케팅’이 식품업계의 불패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정판으로 선착순 증정하는 굿즈를 얻기 위해 밤샘 줄서기도 마다않는 소비자들이 생기면서 굿즈 마케팅에 동참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굿즈 판매로 수익성을 높이고 화제가 될 경우 홍보효과까지 얻을 수 있어서다.
| 스타벅스 ‘서머 레디백’.(사진=스타벅스커피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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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스타벅스가 최근 출시한 한정판 굿즈들은 당일 매진행렬을 이어갔다.
지난달 21일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21주년을 맞아 각종 한정판 상품을 선보였다. 이중에서도 초록색 장우산이 인기를 끌며 출시 당일 매진됐다. 우산을 사기 위해 매장 개장 전인 오전 7시부터 줄을 섰음에도 구매에 실패한 소비자가 나왔을 정도다.
이어 28일 판매를 시작한 ‘컬러체인징 리유저블 콜드컵’도 매진됐다. 차가운 음료를 담으면 색이 변하는 이 텀블러 역시 대부분 매장에서 개장과 동시에 품절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일에 화장품 브랜드 록시땅과 협업해 선보인 파우치와 여행용 목욕용품 역시 판매당일 전체 준비 수량의 90% 이상이 소진됐다.
앞서 5월부터 7월까지 두 달간 진행한 여름 프리퀀시 이벤트에서도 ‘서머 레디백’은 재고가 보충될 때마다 바로바로 소진돼 구매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굿즈 마케팅 ‘장인’으로 불리는 스타벅스 뿐만 아니라 던킨, 할리스커피는 물론 하이트진로 등 커피업계부터 주류업계까지 식품업계 전반에서 한정판 굿즈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1일엔 서울 시내 던킨 매장에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선착순으로 판매하는 ‘캠핑 폴딩박스’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구매객들이 줄을 서면서다. 해당 제품은 아웃도어 브랜드 노르디스크와 협업한 제품이다. 앞서 27일 해피오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사전 예약도 조기 종료됐다.
| 던킨과 노르디스크가 협업한 ‘폴딩박스’.(사진=던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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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여름 프리퀀시 이벤트와 비슷한 시기, 할리스커피가 아웃도어 브랜드 하이브로우와 협업해 선보인 ‘릴렉스체어·파라솔 세트’도 대란을 일으켰다.
하이트진로가 11번가에서 진행한 ‘요즘 쏘맥 굿즈전’도 매일 완판 행렬을 이어갔다. 하이트진로는 판촉물로 ‘두방울잔’, ‘두꺼비 피규어’ 등 ‘진로이즈백’과 ‘테라’ 관련 상품을 선보인 이후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히 판매요청을 받아왔다.
지난해엔 온라인 패션몰 무신사와 협업해 선보인 ‘참이슬백백’도 판매시작 5분 만에 준비 수량이 완판됐다. 참이슬백팩은 참이슬 팩소주 모양을 그대로 본 따 만든 가방으로, 가방 안엔 소주 전용 수납공간도 있다.
이처럼 굿즈 마케팅이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의 수요와 소비심리를 제대로 꿰뚫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정판 굿즈 마케팅은 방해요소가 있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인간의 ‘저항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이다”며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한정수량으로 준비돼 있기 때문에 더욱 소장욕구가 생겨 인기를 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타벅스가 여름 프리퀀시 이벤트로 선례를 만들고 한정판 굿즈를 소유하는 것이 하나의 팬덤이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후발주자들이 생겼다”며 “다만 너무 과도한 이벤트는 리셀(전매) 등 지나치게 상업성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어 이벤트 시행 업체들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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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를 필두로 굿즈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가 이어지면서 업계에선 유사한 마케팅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상품 수량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공개 없이 한정판 굿즈를 ‘미끼 상품’으로 활용했다면 불공정거래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에선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스타벅스 ‘서머 레디백’을 예로 들면서 사은품 수령 조건을 충족해도 수량이 없어 사은품을 받지 못한 소비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조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실태점검이나 불공정행위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모니터링 하겠다”고 답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선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공정위의 시정조치를 받거나,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과징금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불공정행위인가, 아닌가는 보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판단이 서진 않지만 투명성에 있어선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소비자들이 수량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할 필요성이 있고, 만약 준비 수량이 너무 적었으면 증정품 자체가 미끼 상품으로 보일 측면이 있다. 수량을 공개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괜한 기대를 갖고 커피만 마시는 등 압박감을 준 게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