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엘비는 왜 사모펀드에 400억을 투자했나
by김재은 기자
2020.07.01 05:30:00
대규모 유상증자로 운용 수익률 상승 꾀한 듯
판매사 하이투자엔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 제기
리보세라닙 NDA 등 하반기 모멘텀 기대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코스닥 시가총액 2위 바이오기업 에이치엘비(028300)가 환매중단 사태를 빚은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에 400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히며 논란이 일고 있다. 이익이 나지 않는 바이오기업이 대체 왜 사모펀드에 40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한 것일까.
주주들은 이같은 사실을 유튜브와 언론을 통해 지난 29일 공개한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에게 원성을 드러내고 있다. 리보세라닙 진행상황부터 공개하라고 하는가 하면, 자신 있으면 자사주 매입에 나서라는 식이다. 특히 유상증자 대금 납입이 완료된 지 일주일이 채 안돼 사모펀드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실제 30일 에이치엘비 주가는 4.54% 하락하며 9만2600원으로 마감했다. 이날은 주당 5만2052원에 주식전환된 물량(32회차 CB) 19만6918주가 상장된 날이기도 하다. 다만 유상증자 신주발행가액(7만8700원)에 비해선 17.7%(1만3900원)가량 높은 수준이다.
진양곤 회장은 이번 사모펀드 투자로 손실이 발생한다면 사재를 출연해 모두 보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에이치엘비는 지난 11일 하이투자증권을 통해 판매된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블라인드펀드에 300억원을 위탁했다. 블라인드펀드는 투자대상을 정해놓지 않고 자금을 모은 뒤 적절한 투자대상을 찾는 펀드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에이치엘비가 300억원을 투자한 사모펀드는 지금 문제가 된 공기업 매출채권 등을 담았다고 설명한 크리에이터 펀드가 아니다”라며 “블라인드 펀드로 충주호 유람선 사업(대체자산)에 투자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에이치엘비가 300억원을 투자한 사모펀드는 6개월 폐쇄형으로 운용되며, 목표수익률은 연 5% 내외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24일 에이치엘비가 지분 18.49%를 보유한 에이치엘비생명과학(067630)은 NH투자증권(005940)을 통해 100억원을 사모펀드에 투자했다. 이번에 환매중단 사태를 빚은 크리에이터 채권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상품이다. 이 펀드 역시 6개월 폐쇄형으로 운용되며, 수익률은 연 2.8% 수준이다.
이와 관련 진양곤 회장은 “그동안 자금운용에 있어 철저히 안정성 위주로 운용해왔다”며 “최근 저금리시대 수익을 고민하던 중 현금성 자산 10%를 사모펀드에 위탁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 3월말 연결기준 에이치엘비의 현금성 자산은 303억9600만원에 그친다. 석 달전만 하더라도 에이치엘비가 사모펀드에 투자할 여윳돈이 없었지만, 이번달 대규모 유상증자로 조달된 자금 중 일부를 보다 높은 금리상품에 투자하려던 것으로 풀이된다.
에이치엘비 측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진양곤 회장과 옵티머스자산운용 측의 관계에 대해 일면식도 없다고 밝혔다. 에이치엘비 관계자는 “진 회장은 경영상 큰 흐름에서 판단을 할 뿐이고, 세부적인 투자 대상 등은 담당 임원 등이 결정한다”며 “진 회장과 옵티머스 운용 측은 일면식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부터 옵티머스자산운용에 대한 영업 전부정지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옵티머스운용의 관련 사기혐의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에이치엘비는 3391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유상증자 대금이 납입된 6월 5일로부터 불과 엿새만인 지난 11일 300억원의 사모펀드 투자를 집행했다.
유상증자 규모는 총 3391억원(430만9157주·주당 7만8700원)으로 기존 발행주식 총수의 10.1%에 해당하는 규모다. 에이치엘비는 이보다 하루 전인 10일엔 한국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로부터 지난 4월 빌린 600억원의 단기차입금을 상환했다.
에이치엘비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증권발행실적보고서에서 조달한 자금 3391억원을 △영업양수자금 613억9500만원 △운영자금 40억원 △채무상환자금 670억원 △타법인증권 취득자금 2067억3565만원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유상증자 대금 중 가장 많은 2067억여원(61%)이 지난해 삼각합병으로 100% 자회사가 된 엘리바 테라퓨틱스에 투자된다. 항암신약 리보세라닙을 개발 중인 미국 엘레바 테라퓨틱스가 지출할 기존 파이프라인 임상 비용과 신규 파이프라인 라이센스인에 에이치엘비 유상증자 대금을 쓸 계획이다.
에이치엘비 관계자는 “이번 유상증자를 추진하던 중 너무 안정적인 자금운용을 한다는 내부 문제제기가 있었다”며 “(유증으로) 적지 않은 자금이 조달되는 만큼 일부는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사모펀드에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2000억원을 운용하는데 있어 수익률 연 1%포인트 차이는 20억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에이치엘비는 대다수를 국공채, 은행 예금, 증권사 머니마켓펀드(MMF) 등에 넣었고, 일부를 사모펀드에 넣었지만, 처음으로 투자한 사모펀드에서 환매 중단 등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진양곤 회장은 “회사자금 일부를 사모펀드에 위탁 운용한 게 회사에 이익이 되고자 했던 마음이지만, 결과적으로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었다”며 “이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며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소송 등 원금 회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손실이 발생할 경우 손실액 전액을 사재 출연할 것”이라며 “손실가능 최대액을 회사에 제 주식으로 위탁하겠다”고 했다.
현재 진 회장 보유 지분은 7.92%(425만5451주)수준으로 30일 종가(9만2600원)기준 400억원이면 43만1965주(0.8%)를 위탁해야 한다. 이는 진 회장 보유지분의 10.2% 수준이다.
주주들이 궁금해하는 리보세라닙 등 신약 개발에 대해 에이치엘비는 다양한 모멘텀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에이치엘비 관계자는 “항암제 리보세라닙의 판매허가신청(NDA)과 난소암 치료제 아필리아의 판매 개시, 이뮤노믹 테라퓨틱스의 뇌종양 치료제 임상 2상 종료 및 결과 등이 주요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사주 매입 등 주주가치 제고에 대해선 “자사주 매입은 잉여금을 사용해야 하는 등 상법상 규정하에서만 가능하다”며 “현재는 옵티머스 펀드 투자금 회수가 최우선이며, 주주가치 제고는 현재 진행 중인 바이오사업의 성과가 맺어질 때 자연스럽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분기 에이치엘비는 매출액 120억원, 영업손실 52억원, 순손실 136억원을 기록했다. 아직까지 바이오부문 매출이 없다.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는 항서제약에서 로열티 수입 등이 발생하며 바이오 매출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2019년 항서제약에 중국 판권을 넘긴 리보세라닙 매출분에 대한 로열티를 연말부터 수령할 예정”이라며 “아필리아의 하반기 독일 시판을 위해 노력 중이고, 올해부터 항암제 매출(로열티 포함)이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